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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겹고 색다른 타고난 이야기꾼, 성석제

소설가 성석제


△ 칼과 황홀 성석제 씀 <문학동네>
성석제가 신간 ‘칼과 황홀’을 들고 독자들을 찾았다. 항상 흥겨운 입심으로 독특한 세계를 풀어내는 소설가인 그는 여행을 좋아하고 음식을 좋아한다. 시와 소설, 거기다가 음식이야기까지. 풀어내지 못하는 이야기가 없는 그, 성석제를 만나봤다.

(본 인터뷰기사는 BTN 프로그램 ‘나의 삶 나의 불교’의 토크를 바탕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새롭게 낸 책이 ‘칼과 황홀’ 도대체 ‘칼’과 ‘황홀’은 어떤 관계인가요?

음식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소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산문이라고 하기도 무엇해서 이야기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먹었던 음식, 그 음식을 해 준 사람, 만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책 한권 분량으로 모아 본 것이죠.

제목의 ‘칼’이라는 것은 음식 재료가 되는 것들을 요리하는 도구, ‘황홀’은 음식을 먹고 난 뒤에 느끼는 감상을 이야기해요. 그리고 그 사이에 사람이 있다하면서 제목을 그렇게 지었습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

전 아마 뼛속까지 한국 사람인 것 같습니다. 농사를 지은 집안에서 태어나 맛보고, 먹고 했던 것들이 좋아하는 음식의 대부분을 이룹니다.

한식의 기본인 곡물과 채소로 이루어진 식단, 발효음식, 장류, 그런 것들이 들어 있는 음식들이 입에도 잘 먹고 입에 물리지도 않고 또 죽을 때까지 물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혹시 사찰음식은 좋아하시나요?

굉장히 좋아합니다.

제가 어릴 때 먹었던 음식이랑 가장 원형으로 가까운 음식이 사찰음식이 아닌가 싶네요.

2-3년에 고향에 갔다가 우연히 새로 생긴 박물관이 있어 들렀는데 그 근처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었어요. 그런데 그 비빔밥이 어릴 때 먹었던 그 맛과 아주 흡사했습니다.

마치 내 머릿속에 깊이 숨어있는 감각을 깨우는 깊은 맛이었어요. 그래서 음식을 만든 분을 만났더니 그냥 인심 좋은 아주머니더라고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음식은 근처에 있는 절에서 만든 장류, 장아찌로 만든 거였어요.

그래서 그 절에 찾아가서 맛을 봤는데 그건 정말 아주 어릴 때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먹어왔던 본질적인 맛이었습니다. 스님을 만나 특별한 비결이 있는지 여쭸더니 특별한 비법은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마 절에서는 변하는 입맛에 영향을 받지 않아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예전의 본질적인 맛을 지킬 수 있는 곳이 바로 절, 절의 사찰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 고향에 대한 추억이 남다르실 것 같아요.

저는 외톨이였어요. 워낙 집안에 식구들이 많고, 농사를 크게 지었습니다.

거기다가 첫째도 아니어서 부모님이 자유롭게 키우셨어요. 다른 오락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는 시골이니까 집에 있는 책에 빠졌죠. 그 취미가 무협지로 연결이 돼서 무협지만 수 천권을 읽었습니다. 책하고 놀다가 유년 시절을 거의 다 보냈죠.


△ 소설가 성석제
‘내가 글쓰기에 소질이 있구나.’ 하는 건 언제쯤 알았나요?

아마 군대 다녀와서가 아닐까 싶어요.

흔히들 문인들을 보면 어릴 때 재능이 나타나고, 두각을 들어내고 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그런 자각이 거의 없었어요.

중 2때 서울로 이사를 와 무협지 대본소(만화방)를 갔는데 이미 안 읽은 책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 때 무협지와 이별을 했습니다. 무협지만큼 나에게 자극을 줄 만한 책이 뭐 있을까 하다가 바둑책을 읽었죠. 그 때부터 1년 동안 국내의 모든 바둑책을 모아다가 읽었습니다. 물론 학생이니 교과서도 읽었죠. 하하하.

중2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오자마자 담임선생님이 특별활동으로 등산반을 들으라고 하대요. 등산반은 일주일에 한번 씩 산악구보 했습니다. 그래서 3학년 때는 이왕이면 몸 안 움직이는 것으로 하자해서 도서반을 들었어요. 거기서 연암 박지원선생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경이로운 경험이었어요. 그게 결정적으로 문학의 길로 접어들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박지원선생의 책도 한문을 한글로 바꾸어 놓은 책이죠. 그런 면에서 무협지와 비슷해요.

그러나 무협지와 박지원의 차이는 바로 완성도입니다. 박지원의 작품이 달콤함이나 짜릿함을 주지는 않지만 여러 번 읽어도 물리지 않는 완성도 높은 작품입니다. ‘스스로가 성장하는구나.’를 느끼게 해 준 책이었어요.

‘책도둑’ 이라는 말이 있던데 무슨 이야기예요? 책을 훔쳐서 봤다고요?

남이 장사하는 책을 훔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대학 들어갔을 때, 비슷한 취미의 친구들끼리 어울리게 되었는데, 문학에 관심 있는 아이들이라 그런지 서로의 집에 가면 우선 서가를 정탐했어요. 내 책장에 없는 책이 있으면, 호기심과 경쟁심이 생겨서 처음에는 빌려 달라고 하다가 나중에 그냥 가져가요. 집에 가서 보겠다고 하고 안 준 책도 많죠. 친구들이 제가 군대 간 사이에 집에 와서 제가 훔쳐간 것 더하기 자기가 훔쳐가고 싶은 책까지 가져갔어요.

중학교 2학년 때 가족이 모두 서울로 왔다고 하셨는데, 교육 때문이었나요?

아무래도 교육이 가장 큰 이유였죠.

서울에 오니까 내가 태어나서 봤던, 만났던 사람들의 몇 십 배의 사람들이 행군을 하듯이 많이 다니고 있었습니다. 가리봉동, 구로공단 쪽에 살았는데 아침에 학교 갈 때 보면 골목골목에서 수많은 사람이 빠져나와서 큰길로 모여서 공장으로 가거든요. 작업복을 입고 묵묵히 걸어가는 것을 보면서 굉장히 큰 문화 충격을 받았어요..

시골에서 온 소년이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삶이 그다지 안온하고 편안한 것이 아니었고,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어 싸움도 많이 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울음소리가 들리는 그런 가난한 동네였거든요. 그것은 저에게도 굉장히 큰 공부가 되어 문학을 하게 한 큰 원동력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건물 지하에 형들이 있었는데, 반복되는 음악을 틀어놓고 일을 했어요. 그런 형들이 일요일이 되면 흰 바지, 흰 구두를 갖춰 입고 아가씨들을 만나고 어딘가로 갑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집에 돌아올 때 어깨가 축 쳐져서 오면 나도 덩달아 슬프고 했어요. 형들이랑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먹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어울려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전공을 보니 법학이시네요?

대학에 들어 갈 때는 계열로 들어갔어요. 1학년 때 공부를 해 보고 2학년 때 법과로 진로를 정했습니다. 1학년 때 문학회에 들어가게 되면서, 어렴풋이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어요. 불교적으로 이야기하면 법학과를 간 것은 문학을 위한 방편이 아니었나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집에서 ‘법학과’를 가면 마음을 잡았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그 정도 노력을 해줘야 할 것 같아서 전공으로 선택한 면도 있고요, 법학 공부가 문학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리닦는 시인’로 등단을 했어요.
시도 쓰고 소설도 쓰는데, 시와 소설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시와 소설은 같은 문학의 범주 안에 있지만 창작 메커니즘을 전혀 달라요.

시는 일정한 전압, 그러니까 시를 쓰던 안 쓰던 그 일정한 전압 안에 있어야 하지만 소설은 전기가 들어왔다 나갔다 해도 되요. 시는 가볍고 노래 같은 것이지만 소설은 무겁고 세속적이고... 나에게는 매우 재미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양립 시킬 수가 없어요.

글을 쓸 때 어떤 신념이 있나요?

신념? 그런 것은 없어요. 나는 골에서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자라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해 아직도 날 편안하게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신념과 가르침 같은 것은 없습니다만 문학을 하면서 기본적인 태도는 있습니다.

'늘 사람을 생각한다.'

사람의 잘나고 위대한 면보다는 아래 있는 우울하고 불편하고 헐벗고 불행한 사람들. 눈물과 연민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찰여행은 자주 하나요?

여행을 하면 거의 반드시 그 지역의 사찰에 들립니다.

특별히 신심이 깊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절을 가지 않으면 그 지역을 안 간 것처럼 미진하게 느껴져서 그렇습니다. 도시에 가서 그 도시의 사찰을 가보면 이 도시가 어떤 도시인지 알 수 있어요. 수첩을 정리하다보니, 5-6년 전에 봄철에 절에 간 것을 기록해 놓은 메모가 있더라고요. 장흥 보림사, 안성 칠장사... 한 지역을 갈 때마다 그 사찰에 대해 다 적어 놓은 것을 보고 나 스스로도 놀랐어요. 절의 전각, 전각에 계시는 부처님까지 자세히 적어놓은 수첩이었어요.

불교에 대해 쓴 글도 있나요? 혹시 앞으로 그런 계획은 있는지?

‘본래면목’이라는 불교용어에서 나온 제목을 단 단편소설은 있습니다.

저는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불교에 관련된 글을 쓰지 않을까 싶어요. 일부러 의식해서 불교에 대한 글을 쓰게 되면 오히려 굳어버릴 것 같아요.

20대에 좋아했던 책이 있는데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베고, 난을 만나면 난을 베고’ 이런 말이 적혀 있어요. 문학에서 무엇 무엇을 하겠다고 의도적으로 세우면 그것이 장애가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본연의 자세를 지켜 나가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같이 만나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진, 글 = 이진경

BTN 이진경  btnnews@b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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