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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장사익, 인생은 희로애락이죠

노래는 인생의 희로애락이죠.

이 시대의 소리꾼, 장사익.

장사익은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 데뷔하여 가수보다는 소리꾼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충남 홍성 광천읍에서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25년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소리꾼의 인생을 살기까지. 장사익은 그의 인생에서 소리를 팔자소관이라고 표현한다.



"내가 소리꾼이 된 건 팔자소관이죠. 나에게 노래는 인생의 희로애락입니다."

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짓는다.

장사익의 부친은 동네에서 알아주는 장구잡이였다. 아버지의 기질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았다. 7남매 중 맏이. 먹고사는 것이 급해 상고에 진학하여 보험회사에 취직했다. 종로에 있는 보험회사에 다니면서도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낙원동의 음악학원에 다니면서 노래를 불렀다. 군제대 후 무역회사, 전자회사, 노점상, 카센터 등등 전전하며 25년을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다 1993년 김덕수 사물놀이패 등을 따라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전주대사습놀이에서 '공주농악'으로 장원에 뽑히고 전국민속경영대회에서 '결성동요'로 대통령상을 타고, 또 그 이듬해 전주대사습놀이에서도 '금산농악'으로 장원에 올랐다.

친구들의 만류에 못 이겨 사람들 앞에서 소리를 하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사연을 듣다보면 세상에 노력 없는 성공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1994년 11월 서울 신촌에서 첫공연을 한 이후 정식 가수로 데뷔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의 대표곡은 '찔레꽃' 애절한 그의 목소리가 스튜디오에 울린다. 작은 종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지만 뭐 그런대로 괜찮다고 수더분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사투리에서 여유로움과 천진함이 느껴진다.

그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매 공연마다 매진을 기록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양한 연령층이 그를 좋아하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팬은 10여 년 전 일본에서 만난 사람이라고 한다.

"10여 년 전, 일본에서 한 사람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암에 걸려 투병 중인 교수였는데 예전에 나의 공연을 봤다면서 죽기 전에 한번 만 더 봤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리허설 중에 찾아 왔길래 당신을 위해 공연을 하러 왔다.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는데도 자리를 뜨지 않아 리허설과 본 공연 사이에 1시간 30분 동안 그 한 사람만을 위한 공연을 했습니다. 그 분은 공연이 끝나고 한 4일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사익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장사익은 막역한 사이인 박범훈 前중앙대 총장에게 총장 취임식 때 축하노래를 불러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고민하던 그가 선택한 노래는 바로 대전부르스 


대전부르스


잘~있거라 나는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


세상은 잠이들어 고요한 이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줄이야 아-아 ~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당시에 취임식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을 당황시켰던 장사익의 대전부르스. 박범훈에게 총장직을 맡기고 떠나가는 前총장을 위해 준비했는데 막상 그때의 그 엄숙한 분위기를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고 한다.

번쩍번쩍한 무대에서 폼 잡는 것 보다 대우 안 받고 가는 작은 무대가 더 편하다는 이 시대의 소리꾼 장사익.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만큼 구수한 그의 노래가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기를 바란다.


BTN 이진경  btnnews@b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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