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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선 대종사, '새벽 별 금성'으로 우리 가슴속 영원히


후덕한 모습으로 늘 종무소 한 쪽에 앉아 신도들을 따뜻하게 지켜보셨던 노스님.

그러다 인연이 된 이들에게 품 안 염주를 꺼내 채워주며 항상 잊지 말고 차고 다니라 당부하셨던 명선스님.

평생 셀 수 없을 만큼 나눠준 염주알에는 부처님 법을 만나 행복하기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이웃집 할아버지 같던 조계종 제19교구 지리산 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 대종사가 지난 2일 새벽 4시 59분 법랍 71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30년 동안 노력해 대가람을 일군 여수 흥국사에서 세연을 다한 스님은 극락정토 사바세계로 떠났다.

지리산 자락, 새벽 비보에 놀랐는지 화엄사가 오늘 따라 더 적막하다.
 


종무소에 주지 덕문스님, 부주지 우석스님, 종무소 직원들이 앉아 조실 스님 장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논의하느라 점심공양 시간이 다 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

영단에 올릴 지방의 글씨 크기부터 서체 하나까지. 

모든 것을 세심하게 살핀 스님들은 입구에서부터 분향소, 다각실 등 소임자 배치와 방사 배정 등 각자 업무를 나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주지 덕문스님을 선두로 화엄사 대중 스님들이 일주문 앞에 모였다.

여수 흥국사에서 출발한 명선스님 법구를 화엄원에 모신 후, 문장 종국스님을 비롯한 대중 스님들 모두 함께 삼배로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이 자리에서 문도들은 평소 스님의 화두이자 평생의 가르침이었던 ‘대중화합’을 가슴에 새기고 중생의 이익이 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영정 속 엷은 미소를 띤 채 불자를 손에 든 명선 대종사.

1936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이듬해 속가 외삼촌인 도광스님 손에 이끌려 출가했다.

전쟁 후 모두가 힘들고 가난했던 시절.

스님이 되면 세 끼는 물론 노력하면 공부도 시켜준다는 소리를 들은 17살 소년 ‘용식’은 출가해 ‘명선’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행자 시절 온갖 궂은일을 다하면서도 천수경을 종이에 세 줄씩 적어 밥 지을 때나 땔감을 팰 때 달달 외웠다고 한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 1959년 해인사 불교전문대학  대교과를 졸업한 스님은 1975년 동국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종무행정에 눈을 떴다.

해인사, 상원사 등 선방을 돌며 15안거를 성만한 스님은 1975년 8월 지리산 화엄사 주지 소임을 맡게 된다.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 

1980년 국민을 호도할 목적으로 조계종에 당시 계엄 지지 선언을 지시한 군부는 스님들이 이를 거부하자 무력으로 불교계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전국 법당을 군화발로 짓밟은 당시 합동수사단은 화엄사에도 난입해 주지였던 명선스님을 보안부대로 끌고 가 무려 60일 동안을 감금하고 고문했다. 

장이 파열돼 13시간 동안 응급수술 끝에 다행히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그 후유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신경과민증에 걸려 가지고 잠도 못자고 그랬어. 소변도 서서는 못 봐. 앉아서 좌변기에 앉아서 보지. 지금도.”

스님의 육성 증언과 상처는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아 불교계를 탄압한 군부의 만행을 알리는데 크게 공헌했고 대통령의 사과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10.27법난 피해자모임 회장으로 활동했던 스님은 여수 지역 발전에도 힘을 보탰다.

지역 호국 의승군들의 업적을 알리고 수륙대재를 봉행했으며 여수 엑스포 유치, 한국불교 전통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데도 앞장섰다.
 


화엄사에 마련된 분향소에 조문 행렬이 시작됐다 .

조계종 전 총무원장 설정 대종사를 시작으로 전 원로회의 의장 세민 대종사가 분향했다.

동국대 이사장 돈관스님, 윤재웅 차기 총장도 조문했고 맏상좌 진만스님을 비롯해 상좌 20여 명이 분향소를 지켰다.

불국사 관장 종상 대종사, 조계총림 방장 현봉 대종사, 해인총림 방장 원각 대종사, 금산사 조실 도영 대종사 등 원로 스님들의 분향도 이어졌다.

화엄사 회주 종열스님은 원근에서 찾아 온 종단 원로스님들을 맞이하며 상주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바쁜 일정에도 분향소를 찾은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명선 대종사의 원적에 애도를 표하고 속환사바하길 발원했다.

현문스님을 비롯한 교구본사 주지스님들과 중앙종회 의장 주경스님 등 종단 주요 소임자, 제방 선원 수좌 등의 조문도 계속됐다.

김영록 도지사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주철현, 서동용 의원과 정기명 여수시장 등 정치권 인사들. 

또 여수, 구례 지역 불자들이 큰 스님께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원로회의 의장 학산 대원 대종사는 만장에 ‘백설상명월옥전상일조(白雪上明月玉殿上日照)’ “하얀 눈 위에 밝은 달이 떠오르고 옥으로 만든 집 위에 밝은 달이 떠올라 해가 비친다”라고 적어 명선 대종사를 추모했다.

이제 스님과 작별해야 할 영결식 날 아침.
 


한국불교 대표방송 BTN불교TV도 전국 불자들과 함께 명선스님을 떠나보내기 위해 유튜브 생방송을 결정하고 준비했다.

주지 덕문스님을 비롯한 화엄사 대중은 아침 일찍부터 준비하며 큰스님 마지막 가는 길에 소홀함이 없는지 내내 살폈다.
 


종정 예하 성파 대종사는 영결식에 추모법어를 내려 “생사 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 없는 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스님을 칭송했다.

달라이라마 존자와 윤석열 대통령도 화엄사에 조사를 보내 애도를 표했고 종단 주요 소임자 스님들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정률스님의 추모곡을 뒤로하고 법구는 만장을 앞세워 화엄사 경내를 돌아 다비장으로 향했다.

일주문 앞에서 노제를 지내고 인연 깊었던 화엄사와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나오세요.”

육신은 이내 불꽃을 피우며 하얀 연기로 한참을 나투더니 더 이상 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이 되 지리산 천왕봉 너머로 흩어졌다.

평생 화합을 강조했던 명선 대종사는 그렇게 후학들의 극진한 배려 덕분에 편안하게 먼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전국 수많은 불자들이 함께 눈물로 배웅해 금성당 명선 대종사는 외롭지 않았으리라.

영원한 자유를 누리며 머나먼 적멸의 길로 떠난 스님은 “무량겁 쌓은 업장 다 소멸하고, 부지런히 불도 닦아 중생 제도하라. 만일 금생에 이루지 못하거든 내생에라도 꼭 이루어, 널리 나와 남도 이롭게 하고 모든 중생도 이익케 하라”는 마지막 가르침을 남겼다.
 


한 민족끼리 총 부리를 겨눈 전쟁의 참상을 지켜 봐야했고, 권력을 잡기위한 군부의 무자비한 폭력을 온 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인간 ‘박용식’. 

대한민국 아픈 역사와 질곡을 끊기 위해 그렇게 평생의 화두로 ‘화합’을 강조했던 큰스님.

이제 동트기 전 새벽녘, 동쪽 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 ‘금성’으로 우리 가슴속에서 영원히 빛났다. 

 


김민수 기자  btnnews@b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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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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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적행 2023-02-10 17:11:27

    어린이불교학교 인연으로 만나뵌지 수십년 그때부터 받은 염주가 셀수없어 나눔을 하기까지
    그때도 십년뒤에도 또 십년 십년 하고도 몇년을 뵈면서 항상 어르신이셨습니다.
    누구에게나 나눔을 하시던 그모습은 어릴적 내 할아버지의 모습 동네에서 칭송과 존경하는 어르신이 되어 동네 애소사를 관장하시던 그런 어르신이셨던 큰스님
    스님 편안히 가시옵소서.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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