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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감동 준 '평화의 종' 원광식 鐘의 세계 열리다
  • BTN불교TV·연합뉴스
  • 승인 2022.07.2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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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성종사 제공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신비로운 소리로 지구촌에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파했던 현존 최고(最古)의 오대산 상원사 동종(통일신라 725년·국보 36호)을 재연한 ‘평화의 종’. 끊길 듯 이어지는 소리의 청명함이 개막식을 지켜보던 70억 세계인에게 특별한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당시 지구촌을 숙연하게 한 ‘평화의 종’의 제작자가 국가주요무형문화재 112호인 주철장 원광식 선생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원 주철장은 평화의 종은 물론 서울 보신각종, 대전 엑스포대종, 충북 천년대종을 비롯해 조계사, 해인사, 통도사, 불국사, 선운사, 선암사, 화엄사, 송광사 등 국내 주요 사찰의 거의 모든 동종을 제작한 거장입니다. 

원 주철장의 삶과 작품세계는 지난 7월4일부터 오는 10월 9일(월요일 휴관)까지 충북 진천 주철장전수교육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 중인 ‘중원의 금속공예 장인-주철장, 유기장, 금속활자장’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 특별전은 ‘금속공예의 금자탑, 범종’ ‘그릇의 품격, 유기’ ‘인류 발전의 근간, 인쇄술과 활자’ 등으로 구성돼 원 주철장과 함께 유기장 김수영, 금속활자장 임인호 선생의 작업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중원의 금속공예 장인’ 전시를 계기로 주철장 원광식 선생을 연합뉴스가 22일 ‘충북 장인열전’이라는 코너에서 소개했습니다. 다음은 BTN뉴스가 연합뉴스 기사를 재구성한 원광식 선생의 스토리입니다. 

올해로 81세를 맞은 원광식 주철장. 

원 주철장은 통일신라의 종소리를 찾아가는 일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앞서 소개했듯 국내의 거의 모든 주요 사찰과 어느 정도 알려진 종의 대부분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대만 최대의 범종인 명선사종(33t, 8800관) 등 불교권 국가에서도 그가 혼을 불어넣은 작품이 울리고 있을 정도입니다. 

팔순을 넘긴 지금도 그는 충북 진천에서 주물공장 ‘성종사’를 운영하며 여전히 땀 냄새가 깊게 밴 작업실에서 종 제작에 여념 없습니다. 

"쇠에 생긴 기포는 마감재를 입혀 매끈하게 메꿀 수 있다지만, 그러면 제대로 된 소리가 나겠어요? 그래서 용광로 불을 끄는 거예요. 하늘이 허락할 때를 기다리는 거지요." 

그는 지금도 ‘최고의 소리’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몰두합니다. 깊어진 주름과 말과 행동은 느려졌지만, 종 이야기를 전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스무 살 청년 못지않습니다. 길지 않은 설명이지만 노 장인의 원칙과 철학이 확실히 느껴집니다. 

경기도 화성에 태어난 원 주철장은 17세 되던 해에 8촌 형이 운영하는 주물공장에서 일을 도우면서 종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어린 원 주철장에게 주물 일은 무척이나 고됐고 위험해, 결국 어느 날 작업 중 쇳물이 튀어 오른쪽 눈을 실명했습니다. 한쪽 시력을 잃은 뒤 온전치 못한 몸이라고 공장에서 쫓겨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종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잠자리에 누우면 귓전을 울리는 종소리에 다른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충남 예산의 수덕사에 들어가 범종 만드는 일을 다시 시작했고, 1973년 8촌 형이 세상을 떠난 뒤 자연스레 주인 없는 성종사를 맡게 됐습니다. 

그가 만든 종소리에 대한 소문이 나면서 공장이 번창하기도 했지만, 그는 사업보다 전통의 소리를 찾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일본으로, 중국으로, 나라 밖으로 유출된 신라와 고려의 종을 찾아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탁본을 떠서 가져와 복원을 반복했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94년 일제강점기 때 소실됐던 ‘밀랍주조기법’을 마침내 복원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2001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장인 반열에 오른 것도 이 덕분입니다. 

60년 넘게 걸어온 고독한 외길 인생이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그는 마지막 목표가 있다고 합니다. 후대에 길이 남은 인생 역작을 하나 남기는 것. 

“전통을 잇는 것도 중요하지만 옛것을 지키고 복원만 해서는 안 됩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시대의 종을 만들어야 발전이 있는 것이지요. 팔순이 된 작년에야 비로소 진정한 소리를 내는 원리를 안 것 같아요. 이제야 깨달은 게 아쉽지만, 죽기 전에 진짜 내 맘에 드는 작품 하나 만들 수 있겠다 싶어요.” 

창작 의지를 불태우는 팔순 청년은 ‘지금까지 만든 작품에 만족하지 않냐’는 질문에 "세상에 100점은 없어요, 있어서도 안 돼요"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습니다. 

“후한 점수는 곧 나태로 이어져요. 내 인생의 역작이 나오더라도 잘해야지 80점 아니면 90점 정도 줄 수 있을 거예요. 장인은 배가 부르면 안 돼요. 내가 돈을 모르고 한 우물을 판 덕에 지금의 자리까지 온 것 아녜요? 항상 생각하지요. 인간은 기껏해야 백 년을 살지만, 종은 천 년을 넘겨 깊은 울림을 남긴다는 걸‥” 

그의 마지막 말이 은은하게 퍼지는 범종 소리처럼 여운이 잦아들었다가 되살아나기를 반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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