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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을 향한 고집불통②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


(1편에 이어)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에서 일하게 된 그는 71년부터 ‘전시회를 해서 일반에게 공개하자’는 취지로 전시회를 시작했다. 그리고 매년, 연구한 결과를 함께 보여주는 연구논문을 실기로 했다. 처음 연구는 진경산수화로 잘 알려져 있는 ‘겸재 정선’ 이었다. 논문은 최순우 선생이 썼지만 ‘겸재’는 지금까지도 최완수의 이름을 따라다니는 그의 대표 연구 주제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앞에서
“불상도 불상이지만 일본의 식민사관을 극복해서 긍정적인 시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결심은 시간이 지나도 늘 자리 잡고 있었어요. 그런데 성리학은 정체되어 있고 통설이 되어 있는 것을 기록만 가지고 뒤집기가 힘들어요.
 
묘방이 없을까 하다가 겸재 정선의 그림을 보고 깨달았어요. ‘아, 이거다! 겸재의 그림은 세계적이다.’ 그때부터 겸재 연구를 내심 작심하고 있었어요. 지금까지 해서 얼마 전에야 연구를 종결시켰습니다.”

겸재로 1회 전시회를 잘 끝내고 나서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추사 김정희. 그 때는 추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을 때였다. 전시회 도록 뒤에 논문을 실어야 하는데 아무도 써 줄 사람이 없었다.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꾀를 내어 이번 전시회가 추시 전시회의 시작이니 다음호에 쓰겠다고 다음으로 넘겼다. 약속을 했으니 지켜야 할 터. 그때부터 추사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논문이 실리지 않은 것은 2호가 유일해요. 결국 ‘김추사의 금석학’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는 논문은 3호에 실었습니다. 그 때 나이 삼십이었어요. 관람객들이 논문을 읽고 나서 저에게 ‘이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접니다.’ 했더니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그 추사 연구로 인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의 반, 타의 반. 추사와 겸재를 널리 알린 사람이 되어 버린 셈이죠.”

최완수는 항상 ‘우리문화와 대중과의 소통’을 말한다. 학자들이 학문을 이해하는 것에 목표를 두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이해하는 것에 그 목표를 두고 있다.

“학자가 학문을 전공으로 하는 것은 학자들이 이해하는 것에 목표를 둔 것이 아닙니다. 학자들은 당연히 알아야죠. 학문을 연구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일반 사람들이 학자들이 연구해 놓은 지식을 충분히 이해하고 자기화 시키는 것에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마치 보살들의 최후의 목표가 재가신도들을 성불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죠. 저의 제자들도 이런 생각에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월간조선에 6년간 연재한 ‘명찰 순례’를 통해 명찰 56곳에 대한 역사, 유물을 이야기했다. 매월 한 개의 사찰을 순례하고 그 사찰의 역사, 유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벅찬 일이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절은 1회에 실은 송광사였다. 그는 송광사를 아무래도 전생에 자신이 출가한 절 같다고 말한다. 여러 절들이 있지만 김천에 있는 청암사 또한 기억에 많이 남는다.

또한 EBS '우리문화 바로보기‘는 최완수를 스타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할 정도로 유명해졌고 각 학교에서 프로그램을 녹화해서 수업자료로 쓸 정도였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과 우리문화를 소통시켜야겠다는 목표는 달성했다고 생각합니다. 대중들의 시각도 환골탈퇴라 할 정도로 굉장히 높아졌죠. 간송미술관에서 전시를 한다고 하면 수십미터 줄을 섰어요. 그런데 다들 하나도 지루해 하지 않고 기다려서 전시를 보고 갔습니다. 그 줄 선 것이 매우 신기해서 후배들과 제작들이 그 줄에 서봤는데 관람객들이 즐거워 할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나눠보니 다들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더라 하여 상당히 만족스러웠습니다.”


△ 1977년부터 시작된 조선시대 왕릉 조사단. 첫 제자들이 대학원에 들어갔을 시작한 왕릉조사는 이제 발표를 앞두고 있다.
칠순이 넘은 최완수 연구실장이 지금 빠져있는 것은 추사와 조선시대 왕릉이다. 추사를 총정리하는 작업은 부지런히 하고 있는 중이고 조선시대 왕릉은 77년부터 제자들과 함께 해 온 작업이다.

조선왕릉은 조선 500년을 통 틀어 미술 양식을 추적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조사하게 되었다. 왕릉은 한 나라의 총력이 집중되는 곳. 이제는 조사를 마치고  지금까지 조사해 온 그 결과물, '조선시대 왕릉의 미술양식'의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후학, 그리고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우리 역사를 자긍에 찬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으로, 자기 비하의 시작으로 보지 말아야 해요. 긍정적인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BTN 이진경  btnnews@b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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