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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이익보다 명예를 지키고 싶어요.”

한복인생 28년, 박술녀

박술녀의 한복은 스타의 90% 이상이 입었을 정도로 유명하다. 박술녀 본인 또한 많은 언론매체를 통해 얼굴을 보이고 있어 대중성을 갖춘 성공한 한복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언론에 비치는 화려한 모습이 그녀의 전부가 아니다. 28년을 1년 365일 휴일 없이 한복에 매진했지만, 웨딩 시장의 변화로 인해 그 동안 지켜왔던 한복의 자존심이 무너질 위기에 처해있다.


△ [엄홍길의 챌린저쇼 소나무]에 출연한 한복 디자이너 박술녀
“제가 자존심을 지킨답시고 웨딩 컨설팅 업체하고 하나도 협력이 되어 있지 않아요. 수수료를 15~20%까지 요구하는데 그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동안 자택을 팔아 5년 정도의 생활비를 쓸 정도로 경제적으로 힘들었어요. 2년 전에는 이제 그만 한복을 그만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한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섬세한 바느질 솜씨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형태만 한복일 뿐 이예요. 빨리 빨리 문화가 한복에도 스며든 것이죠. 한복은 박음선이 울지 않아야 되는데 그러려면 솔기와 솔기부분이 울지 않아야 해요. 그렇게 하려면 한복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빨리빨리 문화가 사라져야 합니다.“

남들이 누리는 사사로운 자유를 누리지 못한 것이 한복인으로 인정받는 이유라고 생각할 정도로 박술녀는 한복에 평생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73cm의 키, 여자로는 드문 큰 체격. 그렇지만 28년의 바느질로 어깨가 많이 망가진 상태이다. 오죽하면 아이를 낳으러 갈때도 마취 직전까지 일을 했고, 몸조리 또한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 고생이 결국은 감상선암으로 돌아왔다.

“무지하게 산 제 탓이 가장 크죠. 하루 종일 일하다보면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오지도 않고 특히나 혼수철이 오면 끼니를 제대로 챙길 수가 없어요. 저녁에 찬밥에 물 말아서 김치 하나 얹어 한 끼 먹는 것이 그 시절의 호사였죠. 지금은 한 21kg 정도 빠졌지만 그 때는 운동도 안하고 집에 들어가면 물수건으로 얼굴만 닦고 그냥 자고. 그렇게 20년을 하다 보니 골병이 들었더라고요. 감상선암이 흔하다고는 하지만, 어찌 보면 ‘이렇게 열심히 산 나한테도 암이 오네.’ 라는 생각이 들어 힘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자기 몸 아끼지 못한 내 책임이었어요.”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 제대로 좋은 스승을 만났고 밤낮없이 바느질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을 성공의 이유로 꼽지만 사실 그녀의 성공에는 가족의 희생, 특히 남편의 희생이 컸다. 박술녀가 사회생활을 하여 돈을 벌고 남편은 집안에서 내조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남자가 백수였나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남편은 공무원이었다. 부인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날개를 접은 셈이었다.

“남편은 참 도덕성이 우수한 사람이예요. 흉을 보라면 3박 4일을 볼 수 있지만요. 하하하. 지금은 후회해요. 어른들이 그러잖아요. 남자는 낮에 나갔다가 밤에 들어와야 한다고. 저야 성공해서 인정 받았을지 모르지만 남편은 제 뒤에서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같이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어요.”

꿈은 있었지만, 형편이 안 돼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다녔던 방직공장, 3년을 기다려 한복 1세대 이리자 선생님의 문하생이 됐던 그 시절, 12명이 돌아가면서 연탄불에 밥을 하며 6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한복 디자이너로 365일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며 욕심을 냈다. 그러나 명성만큼 물질적 대가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저는 어차피 뭔가를 한다고 생각을 하면 옆에서 보는 사람이 질리도록 집착하는 편이예요. 어찌 보면 그것이 욕심이기도 하지만, 무엇인가 내 자신과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복은 ‘누가 만들어도 나 처럼 만들 수 없다’ 이런 자부심이 없으면 안돼요. 소명의식이 매우 큰 편이죠. 직원들에게도 항상 ‘자막에는 박술녀가 올라가지만 이 문화는 너희들이 지켜가고 있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해요.

성공이요? 사실 저도 요즘 제가 성공한 것인가에 대해 반문해요. 이게 진짜 성공인가? 아직도 하루도 쉬지 않고 이렇게 한복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 성공인가 싶어요. 웨딩 시장에 수수료를 줘가면서 제 한복을 팔고 싶지 않아요. 내가 한복을 못하게 되더라도, 한복을 자존심 상해가면서 팔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사실 물질적인 빈곤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한복을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달려온 28년. 박술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얼마 전, 문을 닫은 리치몬드 제과점 홍대점의 사연이 떠오른다. 재벌기업 커피점에 밀려난 제과명장의 30년. 조만간 우리의 전통의복이자, 우리의 문화인 한복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진정한 전통은 한복에서 묻어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우리 의식주는 거의 국속화 되어 있어요. 아파트에 살고, 호텔 음식도 거의 서양음식이고, 우리 의복도 다 서양옷이죠. 저도 평소에는 양장을 입어요. 현실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결혼식, 가족 행사 등 이런 때에는 한복을 입어 우리의 문화를 지켜가는 것이 중요해요.”


엄홍길 대장은 한복 디자이너 박술녀를 위해 히말라야 정상에서의 사진을 모아 사인을 한 현수막을 선물했다. 365일 일하는 즐거움이 가득하다는 박술녀. 대한민국 대표 한복, 박술녀 한복이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켜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BTN 이진경  btnnews@b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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