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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휴먼재단'이라는 산을 넘고 있습니다

'엄홍길휴먼재단'의 산악인 엄홍길

세계에서 처음으로 히말라야 8,000m 16좌를 등반한 엄홍길.

이름보다는 ‘엄대장’으로 더 많이 불렸을 산 사나이 엄홍길이 이제는 ‘엄홍길휴먼재단’으로 히말라야 어린이들의 희망이 되어주고 있다.

이번에 개교하게 될 세 번째 휴먼스쿨 ‘싯다르타 초등학교’는 부처님이 태어나신 불교 성지인 룸비니에 자리하고 있다. ‘싯다르타 초등학교’는 이전에 세워진 학교와 다르게 나무 밑에 천막을 치고 수업을 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 지금은 휴먼스쿨이 세워진다는 소문에 주변 마을의 아이들도 전학 신청을 해 아이들도 50명이나 늘었다. 건물도 더 지어야 하고, 손도 많이 가지만 엄홍길은 그저 설레고 가슴이 벅찰 뿐이라고 한다.


△ 엄홍길휴먼재단의 모토는 '인간사랑, 자연사랑, 상생의 정신'이다. 휴먼스쿨 뿐만 아니라 의료 봉사와 청소년 교육까지 엄홍길휴먼재단은 점점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히말라야 8,000m를 오르면서 항상 히말라야 신에게 기도를 했었어요.

‘히말라야 신이시여, 16구좌의 완등을 모두 이루게 해주면 히말라야를 위해 이러한 일들을 하겠다. 그러니 지켜 달라.’ 고요. 20년 동안 히말라야를 오르면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히말라야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의 기회를 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고기가 아닌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겠다고요.”

세계 최초 16구좌 완등 이후, 쏟아지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로 시간을 보내던 중 엄홍길은 속세에 풀어져 있는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 사람들과 함께 휴먼재단’을 설립했고 히말라야에 ‘휴먼스쿨’을 짓기 시작했다. 첫 번째 휴먼스쿨의 개학일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감동으로 순간으로 남아있다.

“에베레스트 등반 첫 성공은 참으로 순탄치 않은 과정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한 도전이었는데 그 때는 젊었으니까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했었어요. 첫 성공을 위해 두 번을 실패했습니다. 같이 올랐던 세르파가 등반 중 추락해서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어요. 1988년, 세 번째 도전에서 드디어 발 밑에 펼쳐진 히말라야를 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다 품은 듯한 느낌이었어요.

휴먼스쿨의 첫 개학날이 그랬습니다. 에베레스트를 첫 성공 했을 때의 느낌이랑 비슷했어요. 가슴이 너무 벅차 올랐었죠.”

엄홍길의 고향은 고성이지만, 세 살 때 서울 의정부의 산 속으로 이사를 오면서 망월사를 제 집 드나들 듯 다녔다. 집에서 망월사 까지는 30~40분 거리. 망월사를 놀이터라고 생각하고 수도 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니 어느 순간 산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렸을 때의 경험이 본인을 ‘이미 산에 잘 적응하도록 신체적 구조가 갖춰진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였다고 생각한다.

엄홍길은 에베레스트에 오를 때 항상 불상과 염주, 그리고 부처님 사진을 배낭에 지니고 다녔다. 캠프를 차릴 때면 머리맡에 불당을 차려 놓고 기도를 하면서 외로움과 싸우고 마음에 위안을 얻으며 항상 부처님과 함께 했다.   

엄홍길은 지금의 인생을 ‘제 2의 인생을 향한 도전’이라고 말한다. 제 1의 도전이 히말라야 였다면 제 2의 도전은 ‘엄홍길휴먼재단이라는 이름의 산’에 대한 도전이다. 사람들은 흔히 성공을 하면 더 이상의 목표가 없어 힘들 것이라고 하지만 그는 ‘비우면 더 큰 것을 채운다.’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인생의 산을 오른다고 말한다.

‘싯다르타 초등학교’의 개교를 위해 다시 히말라야로 떠나야 하는 ‘엄대장’. 그의 ‘휴먼스쿨’에 언제나 부처님의 가피가 있길 바란다.

BTN 이진경  btnnews@b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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