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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행복해요"불자 가수 장미화

가수 장미화는 부처님이 부르시는 곳, 어디라도 갈 준비가 되어있는 열혈 불자 연예인이다. BTN불교TV와의 인연도 깊어 프로그램 MC는 물론이고, 산사음악회, 연등축제 리포터까지 불교TV가 있는 곳엔 항상 장미화가 있다. 항상 크고 호탕한 목소리와 밝은 웃음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긍정적인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행복전도사 장미화를 만났다.

‘전무송의 나의 삶 나의 불교’의 녹화 준비가 한창인 스튜디오. 장미화는 불교TV가 힘든 시기를 보내던 봉천동 사옥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왔다. 스튜디오에 앉아 오랫동안 알고 지낸 스탭들과 여유롭게 인사를 나누며 지난 시절의 추억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친정에 온 것만 같다.


장미화는 얼마 전, 교민들을 위한 공연 차 러시아를 방문했다. 대부분의 교민들이 다 그렇지만, 러시아의 교민들도 한국말을 잊지 않은 1세대에 비해 그 이후 세대들은 거의 한국말을 하지 못했다. 1세대들은 한국 사람인데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후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제가 교민들에게 그랬어요. 우리 대한민국 잘 살고 있다고. 대한민국 국민들 어느 나라 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으니 대한민국 사람인 것에 자부심 갖고 사시라고. 노래를 부르는데 교민들이 전부 울었어요.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장미화는 교민들을 위한 공연뿐만 아니라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봉사단체 ‘아름다운 손길’ 의 바자회를 통해 소외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바자회에는 후배가수 장윤정, 연기자 강부자 등 동료 연예인과 여러 의류업체들이 참가하여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바자회뿐만 아니라 용플란트 치과와 함께 어르신들에게 무료로 틀니를 해주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어르신들은 틀니가 없으면 음식을 잘 드시질 못하잖아요. 그래서 이가 안 좋으신 어른들은 몸도 많이 마르시죠. 한 어르신께 틀니를 해 드렸는데 몇 달 후에 그 어르신을 못 알아볼 정도였어요. 틀니를 하고 나니 밥을 잘 먹을 수 있게 되어 살이 많이 찌셨더라고요. 봉사활동하면서 제일 보람찬 순간이었어요.”

장미화는 벌써 데뷔 46년차의 베테랑 가수이다. 어렸을 때는 성격이 얌전해서 ‘깍쟁이’라고 불렸지만 데뷔 후 미국에서 ‘팝’을 부르면서 표현력도 풍부해지고 성격도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고3이었던 1968년 노래자랑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기존 가수들과는 다른 창법과 음악 스타일로 평가 받은 장미화은 ‘록의 대부’ 신중현의 러브콜을 받아 미8군 무대에서 노래를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미국에서 공연을 하면 미국 관객들이 와서 맨날 물어보는 말이 ‘TV있냐’ 였어요. 한국을 못 사는 나라로 생각했죠. 기분이 너무 나빠서 그때부터는 월급타서 좋은 옷만 사서 입고 다니자고 결심했어요.”

미국에서 돌아온 장미화는 ‘안녕하세요’로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된다. 미국에서 흑인 노래를 주로 불렀던 그녀의 독특한 창법이 노래에 녹아들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미국에서 사는 6, 7년 동안 영어로만 대화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입에 배인 영어발음이 노래에 묻어나 대중들의 인기를 끈 것이다.

“한창 히트 칠 때는 택시만 타면 내 노래가 나왔어요. 73년에서 79년 사이에 10 곡 이상이 히트를 쳤죠. 뮤지컬도 하고, 드라마 주제곡도 불렀어요. ‘여름의 훈장’ 드라마 주제곡이 히트 못한 게 아쉬워요. 지금 부르면 세대를 뛰어넘는 명곡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음 음반 제작 때 다시 한번 불러보려고요.”


△ 지난 연등축제에 BTN의 리포터로 활약한 가수 장미화. 항상 유쾌한 진행과 넉넉한 웃음으로 우리의 마음에 에너지를 심어준다.

장미화와 불교와의 인연은 병원에서 시작됐다. 1988년, 장미화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척추를 다쳐 오랫동안 입원을 하게 되었다. 실의에 빠진 그녀에게 같이 입원해 있던 중학생 한 명이 책을 가져 왔다. 그것은 바로 ‘법구경’ 이었다.

“그 안에 저의 삶이 다 녹아있더라고요. 미리 좀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전부 내 이야기 같았어요. 그 때의 저는 남편과 이혼 후 계속 남편을 욕했거든요. 법구경을 읽고 나서 모든 것이 남편 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가슴에서 불덩이가 내려간 것만 같았죠. 그 이후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장미화는 법장스님과의 인연이 깊다. 항상 밝고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주는 그녀지만, 법장스님의 이야기가 나오자 눈물부터 보인다.

법장스님은 장미화에게 아버지이자 친구 같은 분이었다고 한다. 어머니 임종, 49재 등 가장 힘든 시기에 법장스님은 항상 곁에서 딸처럼 장미화를 돌봐 주었다. 어느 날, 갑자기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우연히 TV를 켰는데 법장스님이 임종하였다는 뉴스 자막이 흐르고 있었다.

“뉴스를 보자마자 서울대병원으로 달려갔어요. 지하실에서 누워있는 스님의 발이 보이더라고요. 그 발을 만지고 싶었는데…. 저는 스님에게 불자로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렇지 못해서...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파요. 스님과 저는 항상 ‘무엇을 같이 하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거든요. 아직도 스님이 너무 보고 싶어요.”

장미화는 ‘성냄과 거만을 버리고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행복하다.’, ‘미움을 미움으로 갚지 말고 나 혼자 없애라.’라는 말씀을 항상 가슴에 담고 살아간다고 한다.

자신이 불자임을 자랑스러워하는 행동하는 불자, 가수 장미화. 젊은 후배 불자 연예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선배로, 대중들에게는 에너지 넘치는 불자 연예인으로 항상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길 바래본다.

글, 사진 = 이진경

BTN 이진경  btnnews@b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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