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웃는 얼굴의 방귀희 작가는 어릴 적 놀러갔던 외갓집 마당 한 구석에 피어있던 채송화를 생각나게 한다. 키가 큰 노란 해바라기, 수탉 벼슬 같이 빨간 맨드라미들 사이에서 바닥에 붙어 수줍게 꽃을 피우던 채송화. 채송화는 마치 초록색 손수건에 보석 사탕을 뿌려 놓은 듯 반짝반짝 빛이 났다. 방귀희 작가의 두 눈 속에는 채송화가 들어있다.

“이름 때문에 어릴 때는 놀림도 많이 받았어요. 친구들이 ‘방귀’라고 놀렸죠. 원래 ‘귀’자 돌림이어서 ‘귀희’가 되었는데 우리 어머니는 아무래도 이름 때문에 제가 장애인이 된 것 같다면서 이름을 바꾸라고 했었어요. 그래서 한때는 ‘성원’이라고 불렸었죠. 지금은 제 이름이 좋아요.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이름이니까요.”

  방송작가 30년. 원래부터 방송작가의 꿈 꾼 것은 아니었다. 방송은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1981년, 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면서 방송은 그녀에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당시만 해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대학교를 졸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해 낸 최초의 대학 졸업생이었다. 방송은 관심을 보였고, 그녀는 처음으로 방송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방송이 체질이었던지, 이 후 ‘내일은 푸른하늘’의 고정출연자가 되었고, '방귀희 칼럼'으로 글도 쓰면서 방송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방송작가와 라디오진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이 무려 3만 명. 정식 작가수업을 따로 받은 건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일기를 꾸준히 쓰고, 취미로 동화를 각색했던 것이 자연스럽게 공부가 되었다고 한다.

“대학은 부처님이 나에게 주신 최초이자 최고의 선물이었어요. 예전에는 소아마비를 앓는 사람이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거든요. 그나마 동국대학교에서 입학을 허가해줘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불교가 편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어요. 그렇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불교는 인간이라면 다 배워야 할 인문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국대는 가파른 언덕길로 유명하다. 등하교길은 항상 전쟁이었고 친구들이 7층 강의실까지 업고 올라간 적도 있었다. 그런 동국대를 대학 4년도 모자라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지금은 사회복지학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아직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많아요. 그래서 저는 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단점이자 약점인 장애를 보안하기 위해 더 노력하고 있어요. 많은 장애인들의 앞길을 터주려면 지식 장애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방귀희 작가는 현재 솟대문학의 대표를 맡고 있다. 솟대문학은 장애인문예지다. 방송으로 번 돈을 장애인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글 쓰는 장애인들의 글을 모아 발표하는 ‘솟대문학’을 발행하게 되었다. 솟대문학은 어느새 창간 20년이 되었다.

  요새 들어 정계진출에 대한 권유도 많이 받는다. 입법 활동에 대해 30년 동안 준비해 왔기 때문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한번 소외계층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

“지금의 복지 정책은 가난한 사람에게 자꾸 불고기를 주라고 하죠. ‘가난하니까 불고기를 못 먹어봤을 것이다’라고 무조건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그 사람이 먹고 싶은 음식은 불고기가 아닐 수도 있어요.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사회복지를 하죠. 욕구파악이 사회복지의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후회는 없다고 말하는 방귀희 작가. 앞으로의 인생은 지금까지 열심히 배워온 것으로 사회를 바꾸는 역할을 하고, 그 후에는 후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더 늙어서는 동네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남은 생을 보내고 싶다.

방귀희 작가는 행복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마지막 질문에

“나에게 있어 행복이란 ‘사회에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력하는 만큼의 대가를 주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라고 생각해요.”

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의 기준을 개인의 마음가짐에 두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대답이다.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따뜻해졌다.

글,사진 =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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