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임 명인은 현재 출연 중인 특허 11개를 토함하여 총 30여개가 넘는 김치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86년에 처음으로 김치를 담기 시작해 강산이 두 번 바뀌고 어느 덧 26년 차를 맞이한 유정임 명인.

그저 김치를 파는 장사꾼이 아닌 대학에서 김치 관련 연구도 하고 논문도 부지런히 쓰며 누가 봐도 명실공히 김치명인이 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어머니의 손맛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지금의 명인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그녀를 ‘어머니 나의 어머니’의 녹화 현장에서 만났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에 출연한 유정임 김치명인.

“아버지는 미군부대 통역을 할 정도로 재원이셨어요. 어머니와의 결혼식을 워커힐 호텔에서 할 정도로 부유한 가정이었죠. 그러던 아버지가 내 나이 11살에 돌아가셨어요. 당시에 아버지가 하던 연탄공장의 직원이 회사의 돈을 몽땅 들고 도망을 쳤거든요. 아버지는 화병에 걸리셨고 결국 일어나지 못하셨죠. 어머니가 참 많이 고생하셨어요.”

어머니라는 단어만 나와도 눈시울이 붉어진다는 유정임 명인은 이야기 초반부터 이미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러다가 큰 울음이라도 터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지만 이내 눈물을 훔치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맏딸인 저는 11살 때부터 실질적으로 가정살림을 도맡아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하시던 연탄공장을 이어나가면서 돈을 벌어야 했거든요. 그 때부터 저는 동생들의 밥과 빨래, 청소 등 모든 뒤치다꺼리를 해야 했어요.
다행인 것은 동생들이 잘 따라주었죠. 저는 중학교 중퇴를 했지만 동생들은 고등학교, 대학교 다 원하는 만큼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어요. 그래서 동생들이 아직도 절 엄마처럼 잘 따라주면서도 어려워하죠.”

△ 11월 22일은 한국김치협회가 정한 '김치의 날'이다. 그날은 유정임 명인의 생일이기도 하다. 유정임 명인에게 김치는 인연, 필연, 운명이다.

유정임 명인은 중학교를 중퇴한 학력 때문에 더 악착같이 공부에 매달렸다고 한다. 김치 사업을 시작하면서 가난 때문에 하지 못했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여러 대학의 식품영양학 과정을 거쳐 지금은 대학원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어렸을 때는 제 학력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떳떳하게 말합니다.
많은 분들이 저의 이야기를 듣고 힘을 얻는다고들 하세요.”

명인의 칭호까지 얻게 해 준 김치 손맛은 다 어머니로부터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집에서 직접 산적, 한과, 유과 등을 만들어 자식들을 먹였다고 한다. 23살의 이른 나이에 종갓집 맏며느리로 시집을 갔지만 시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김치에 관련된 비법은 친정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아 연탄공장을 하던 어머니는 사정이 여의치 않자 행상을 나갔다. 계란을 가지고 나가 팔기도 하고, 채소 장사를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남의 잔칫집에 가서 음식을 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서른살에 과부가 된 어머니가 안쓰러웠던 외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아이들을 입양시키고 재혼할 것을 권유했지만 어머니는 모든 자식들을 품으로 끌어안았다.

“하루는 어머니가 나에게 뭘 먹으라고 자꾸 주는 거예요. 평상시와는 다른 어머니의 말투와 분위기에 난 너무 무서웠죠. 어린 나이에도 어머니의 이상함을 감지했던 것 같아요. 나는 그저 ‘엄마, 나 살려줘~’ 하고 엉엉 울었죠. 
어머니가 나중에 말씀하시기를 너무 힘들어서 다 같이 죽으려고 했대요. 저의 울음에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살아보기로 하셨대요.”

옛날 이야기를 꺼내는 얼굴에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이들과의 죽음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때의 고생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만 같다.

어머니는 가정교육만은 철저했다고 한다. 아마도 아버지 없이 자랐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어 더 엄하게 대하셨을 것이다.

△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절도 함께 다니고, 사경 공부도 함께 한다는 친구 같은 엄마와 딸이다.

“11살 때인가 물을 길러 항아리에 채워 넣다가 실수로 항아리를 깬 적이 있어요. 항아리가 키보다 커서 물을 넣다가 옆으로 넘어진 거예요. 어머니가 달려와서 회초리로 저를 막 때리셨어요. 실수로 깬 것이었는데 모질게 때리는 어머니가 너무 미웠어요.
그런데 저를 때리고 부엌에 앉아 있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어린 제가 보아도 너무 슬퍼 보였어요.
제가 어머니 나이가 되어 보니 그 때 왜 그러셨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올해 81살이 된 어머니는 회사에 나와 일을 도와줄 정도로 정정하시다. 사업을 하다가 금전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도움을 준 건 항상 어머니였다고 한다. 신용을 최우선으로 살아온 어머니의 인생관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식품 명인으로 지정되던 날 ‘너에게 미안하다. 공부를 더 가르치는 건데... 잘 자라줘서 고맙다.’라고 눈시울을 붉혔다는 어머니.

유정임 명인은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최대한 잘해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부부동반으로 온다는 여행모임에도 항상 어머니와 함께 다니고, 함께 사경도 쓰고, 절에도 다니면서 하나하나 추억을 쌓아가고 있다. 전화가 귀하던 시절, 시집간 맏딸에게 보낸 어머니의 편지를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는 유정임 명인은 김치뿐만 아니라 어머니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 또한 명인이다.

BTN 이진경  btnnews@b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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