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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심, 우리 어머니입니다."안동일(동산불교대학 명예 이사장)

동산반야회, 동산불교대학 명예 이사장 안동일은 굴곡진 한국 정치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해결해 온 베테랑 변호사이자 조계종 중앙신도회, 한국 경제 불자인 연합회 등의 사회단체 대표로 우리 불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그는 요즘 여전히 바쁜 나날이지만 예전보다 여유가 생겨 시간이 날 때마다 티베트 경전을 읽는다고 한다. 특히 손녀딸의 재롱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른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요즘 매일 108배를 해요. 1998년 붓다클럽에서 회원들과 함께 108배를 하자고 약속했는데 실천을 못했어요. 그래서 3년 전부터 매일 염불과 함께 108배를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천일 만 채우자 싶었는데 천일을 채우고 나니 더 해볼까 하다 평생 하자 다짐했어요.”

안동일은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지금 생각하면 그 좁은 집에서 어찌 8남매가 다 살았나 싶단다. 워낙 형제가 많고 이름이 모두 ‘동’자 돌림이나 보니 밑으로 일곱 동생의 이름이 헛갈릴 정도였고, 그건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3대 독자인 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른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그 만큼 장남으로의 책임감도 컸다고 한다.

아버지는 기자로, 세무사로 평생을 공부와 함께 한 분이었다. 집안 사정은 좋지 않았다. 어머니는 좋지 않은 형편에 8명 자식의 뒷바라지를 위해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간간히 부업도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러브스토리가 아주 소설이예요. 아버지는 어머니가 교사로 있던 초등학교의 학생이었대요. 놀라셨죠? 아버지가 선생님이 아니고 학생이라니까요. 어머니가 그 학교의 선생이고요. 하하하.”

어머니와 아버지의 러브스토리는 아버지의 단편소설에도 등장한다고 한다. 아버지가 신문사에 근무하던 시절, 아버지는 기자들이 기사를 펑크 내면 자신이 쓴 단편소설로 펑크 난 기사면을 메우곤 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안동일이 아버지가 쓴 단편소설을 묶어 책으로 내려고 읽어보니 어릴 적 훔쳐 본 아버지의 일기에 써져 있던 어머니와의 연애사가 그 소설에도 들어있었다고 한다.


△ 어머니는 굉장히 현명한 분이었다. 전쟁이 터져 피난을 갈 때도 가족이 많으니 혹시라도 있을 희생을 줄이기 위해 2팀으로 나눠 피난길에 오른 덕분에 현명한 어머니 덕분에 단 한 명의 희생 없이 무사히 피난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안동일의 아버지는 1968년 석사 학위를 받을 때, 그 동안 자신을 뒷바라지 해 준 아내에게 감사의 뜻으로 기념으로 받은 은수저를 그 자리에서 어머니에게 줬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 은수저를 30년 이상 간직했고, 이제는 아들이 그 은수저를 간직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 같이 겉으로 애정을 표현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끈끈한 부부의 정이다.

안동일은 운동권 1세대다. 항상 쫓기는 몸이었던 안동일은 516 군사정변 당시, 가족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는 안동일의 눈가에는 그리움과 미소가 가득했다.

“혹시라도 경찰에게 잡힐까봐 집으로 들어가는 길 곳곳마다 일곱 형제들이 지켜 서서 제가 집에 오기를 기다렸대요. 제가 집에 가까이 가면 형제들이 미리 정보를 주어 저를 피난 시켰어요. 이럴 때는 형제가 많은 것이 도움이 됐죠.”

항상 걱정 시키는 아들이었지만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아들의 행동을 꾸중하거나 말리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집에 돌아 온 아들이 혹시라도 몸은 상하지 않았나 걱정 했을 뿐.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제가 도망 다니는 동안 어머니가 무속인을 찾아 갔었대요. 무속인이 말하기를 제가 무사하려면 아버지가 무속인 옷을 입고 산에 가서 춤을 춰야 된다고 했대요.
아버지는 당시 유명 언론인(기자)였는데, 저를 위해 산에 올라가 춤을 췄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버지는 평소에 항상 엄격하고 원칙주의자셨는데... 그 때 아버지의 사랑을 느꼈죠.”

안동일의 어머니 법명은 ‘대비심’이라고 한다.. 대비심은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려는 불,보살의 마음이다. 안동일은 어머니의 삶을 딱 한 단어 ‘대비심’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몸이 아파도 새벽 예불을 잊지 않을 정도로 독실한 불자였다. 아들이 중국 출장에서 사 온 옥보살상을 매일 아침 예불할 때마다 쓰셨다는 어머니. 그 어머니의 옥보살상은 이제 아들 안동일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안동일은 8남매가 각자의 가족을 꾸리다 보니 가족모임을 하면 조카 이름들도 헛갈린다며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지금 우리들의 행복은 어려운 시절, 8남매를 위해 평생을 자애로운 마음으로 키워 주신 안동일의 어머니처럼 우리 어머니들의 희생 덕분이 아닌가 싶다.

늘 우리 불자들의 모범이 되는 안동일 명예 이사장. 앞으로도 불교의 큰 일꾼이자, 든든한 버팀목으로 한국 불교 발전을 위해 애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글,사진 = 이진경

BTN 이진경  btnnews@b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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