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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임청하 또는 사미자불교여성개발원 김애주 원장

김애주 원장을 보고 있으면 몇몇의 얼굴의 떠오른다.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중국 배우 임청하, 한국 탤런트 사미자 등. 차분한 단발머리에 조용하면서도 힘있는 말투와 분위기가 제법 많이 닮아있다.

김애주 원장은 힐러리 클린턴을 닮았다는 이야기는 주로 가르치는 학생들(동국대학교 영문학부 교수 재직 중)이 많이 하고, 임청하는 30살 넘으면서부터 간간히 들어왔고, 탤런트 사미자는 오늘 처음 듣는다며 쑥스러워 했다. 김애주 원장과 닮은꼴들의 특징은 아마도 여성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자, 여성의 한계를 넘어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계의 영웅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애주는 현재, 불교여성개발원 원장, 동국대학교 영문학 교수, 동국대학교 미디어 센터장, 생명살림운동, 영108 모임 등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나날을 지내고 있다. 학교 강의는 일주일에 9시간 정도고 나머지 시간에 불교여성개발원의 활동과 다른 모임 활동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특히 영108 모임은 20대부터 40대까지 젊은 불자들의 모임으로 처음에 젊은 불자를 모으기가 너무 힘이 들었지만 지금은 180여 명의 큰 모임이 되었고 모임을 나오는 젊은 불자들도 많이 행복해 한다고 한다.

조용히 말하는 말투 속에서도 느껴지는 열정과 파워. 그녀를 말을 듣고 있자니 그녀의 어머니가 궁금해졌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버지를 따라 불자가 되셨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산부인과 의사이지만 그 전에 세상의 모든 종교를 섭렵하고 연구한 종교인이다. 적어 놓은 노트만 모아도 다락방 하나를 가득 찰 정도라고 한다. 그에 비해 어머니는 젊은 시절, 종교와의 인연이 없었다. 50이 넘은 나이가 돼서야 아버지를 따라 불교에 입문하게 되었고 이 후, 3천배, 불보시 등 열정적인 어머니의 성격 그대로 열성적인 불자가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대한민국 멋쟁이'이다. 의류학을 전공하는 김애주 원장의 딸이 '한국 의복의 역사'라는 주제의 학교 과제를 할머니의 사진을 토대로 '할머니의 옷 변천사'로 발표하여 높은 점수를 받을 정도라고 하니 패션에 대한 사랑을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어머니는 여장부였다. 굉장히 활동적이었고 거시적인 안목을 지닌 분이시다. 그에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 어릴 적, 김애주 원장 가족에게는 마산의 한 섬에 작은 별장이 있었다. 어느 날 대기업이 이 섬을 적절한 보상 없이 개발하려 했고 주민들은 꼼짝없이 당할 처지에 놓였다. 의협심이 강한 어머니는 분노했고 바로 대기업과의 긴 싸움에 들어갔다. 어머니는 청와대까지 몇 번 오고 가면서 결국 대기업으로부터 합당한 보상을 받는 승리를 이끌어 내었다. 여걸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지금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큰 인물이 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김애주 원장은 곰살맞지 않은 성격에 집안일에 소질이 없는 어머니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한다. 마산에서의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학교를 찾아오면 친구들이 수근대서 너무 창피했는데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시절, 학교에 찾아온 어머니를 보고 친구들은 "너희 엄마는 참 멋쟁이다!" 라며 부러워하면서 어머니를 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

대학 졸업 전에 어머니가 점 찍어둔 엄마친구의 아들, 요즘말로 '엄친아'와 결혼하게 된 김애주 원장.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이지만 어머니의 극성이 그 결정에 한 몫을 했다. 어머니의 친구였던 시어머니도 유유상종이라고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명확한 성격과 능력을 갖춘 분이셨다. 그런 시어머니 밑에서 결혼과 공부는 병행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고생하는 딸을 보며 어머니는 일종의 죄책감이 들었는지 그 후, 딸의 학업을 적극적으로 후원을 해주었다. 김애주 원장은 그 때의 어머니의 후원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머니의 40년 된 감색 정장

김애주 원장은 손수 준비해 온 어머니에 관련된 물건을 소개했다. 첫 번째는 본인이 입고 있는 감색 정장. 어머니의 40년 된 옷이라고 한다. 40년이나 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고 관리가 잘 된 옷이다. 어머니는 좋은 옷을 고르는 안목이 뛰어나신 분이다. 그런 좋은 옷을 오래 입는 것이 패션 철학이라고. 두 번째는 표범 목걸이. 표범 모양의 팬던트가 달린 목걸이로 어머니의 감각적인 패션 센스를 엿볼 수 있다. 표범 모양의 팬던트는 브로치로도 사용할 수 있게 되어있다. 세 번째 물건은 성철스님의 친필이 적힌 족자이다. 어머니가 성철스님에게 선물로 받은 것을 자신에게 물려주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불자가 되고 난 후, 정렬적인 성격처럼 종교생활에도 열정을 쏟았다. 항상 화려하게 꾸미시는 어머니였지만 절에서는 법복을 가지런히 입으시고 3천배를 하셨다. 특히 성철스님과의 인연이 깊다. 성철스님을 존경하고 따랐던 어머니는 성철스님의 법문이 담긴 50권의 책을 본인의 승용차에 실고 다니면서 개개인을 만나 판매를 하였는데 그 부수가 무려 300권 이상이었다.

지금은 몸이 아픈 아버지의 손과 발이 되어주시는 어머니. 살아생전에 어머니와 여행을 되도록 많이 다니고 싶다고 하는 김애주 원장. 누구나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렇듯이, "엄마, 사랑합니다" 라는 말에 눈시울을 붉혔다. 부르기만 해도 코가 시큰한 그 이름 어머니.

지금의 김애주 원장을 만든 건, 어머니의 무한한 열정과 사랑이 아니었을까.

BTN 이진경  btnnews@b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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