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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순천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
박순천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

대중들에게는 아직도 전원일기의 둘째 며느리 순영으로 기억되는 배우 박순천.

얼마 전, 종영된 KBS 드라마 '엄마도 예쁘다'에서 생애 첫 악역을 맡아 연기변신을 꾀한 그녀를 '어머니 나의 어머니'에서 만나 보았다.

박순천은 연예계에 몇 없는 제주도 출신 연기자다. 고두심과 함께 제주도 출신 대표 연예인으로 제주도 홍보에도 열을 다하고 있다. 드라마가 끝난 요즘은 집에서 아내로, 엄마로 살림을 하고 있으면서 제주도를 유네스코 7대 경관으로 등록하기 위한 홍보를 계속 하고 있다.

박순천은 원래부터 제주도 출신은 아니다. 중학교 2학년을 충남 금산에서 마치고 중학교 3학년 때 제주도로 이사를 갔다. 아버지가 금산에서 인삼 농사를 짓다 제주도에서 농장을 시작하게 된 것. 농장이라고 하니 드넓은 초원에 한가로이 노는 말 또는 소가 떠오르면서 영화 '가을의 전설'의 브래드 피트가 생각나지만 사실 그건 잘 모르는 사람들의 상상일 뿐이란다. 어느 겨울, 소가 일어나지 않아 소를 살리기 위해 매우 고생했던 부모님을 생각하면 고개부터 설레설레 내젓게 된다.

스튜디오에 놓여있는 부모님의 결혼사진. 훤칠한 미남인 아버지와 성격이 밝고 애교가 넘치는 어머니 또한 미인이다. 두 분 다 생존해 계시지만 최근 아버지의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어머니가 항상 아버지를 돌보게 되어 어머니의 고생이 크다.

어머니 보다는 아버지 이야기를 더 많이 해 프로그램 제목이랑 안 어울려 어떡하냐며 걱정하는 박순천.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 시 어머니에 대한 사랑까지 묻어나는 그 이야기를 들어본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연애사

"아버지는 3남 1년 중 막내였는데 위로 형 2명과 아버지가 2차 세계대전 때 다 사망하셨어요. 할머니가 30대 초반에 과부가 되어 아버지를 키우셨죠. 그래서 할머니가 며느리를 까다롭게 고르셨어요. 어머니는 아버지가 선 본 11번째 후보였어요. 그 11명에는 어머니 친구도 있었죠.

할머니가 아버지에게 동네 사진관에 선 볼 여자의 사진이 있으니 마음에 드는지 보고 오라고 했대요. 아버지가 보고 오셔서는 하는 말이 "어머니 알아서 해요." 였대요. 어머니가 마음에 드셨던 거죠.
어머니는 아버지의 바지런함에 반하셨대요.

아버지는 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 사이가 매우 좋으셨어요. 아버지가 집에 와서 어머니가 없으면 항상 기분이 안 좋으셨어요. 그래서 매번 제가 어머니를 찾으러 갔었죠."

엄마와 딸 같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

"고부간에 사이가 매우 좋았어요.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시집와서 3일 후에 할머니가 어머니를 방으로 불러 그 동안 아들을 키워 온 이야기를 해주시더래요.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듣고 울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후로 할머니를 힘들게 하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했대요.

어머니가 워낙 성격이 밝고 좋으세요. 저를 낳고 나서 방에 누워있는데 할머니가 밖에서 장독대가 너무 더럽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바로 뛰어나가서 할머니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이렇게 이야기하셨대요. "어머니~ 제가 몰라서 그랬어요. 알려주세요." 이러니 할머니도 어머니를 미워할 수 없었죠."



부모님의 사랑을 가득 받은 어린시절

1남 5년 중 맏이.

부모님은 집에 과자 선물세트가 들어오면 뜯어보지 않으시고 그대로 맏이인 박순천에게 주었다. 맏이가 직접 뜯어 동생들에게 나눠주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동생들에게 나눠주다 보면 항상 동생들보다 적게 먹었지만 누나, 언니로의 책임감을 배웠다. 동생들이 싸워도 혼나는 건 항상 맏이였던 박순천. 어떨 때는 어떤 동생들이 싸웠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손바닥을 맞았다. 부모님은 박순천에게 맏이로써의 책임감과 권한을 한꺼번에 가르쳐주었다.

"아버지가 저에게 토끼털 코트를 사주셨는데 그게 그 당시 쌀 한가마니 값이었어요.

어머니는 학교일에 있어서는 한마디로 치맛바람이었죠. 제가 합창, 무용 등을 했었는데 예술제에서 항상 주인공이었어요. 예술제 연습을 하고 있으면 우리 어머니가 우리 반 친구들에게 빵을 나눠주고 선생님께 비누 세트를 선물하시곤 했어요. 그때 시절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삶은 계란을 선물하곤 했었거든요? 그런 어머니의 응원이 저의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바꿔 주었죠."

반대가 심했던 연기자 생활... 그리고 오기

박순천은 초등학교 2학년에 한국 무용을 시작하고, 중학교 1학년에 웅변을 하면서 재능을 발견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바꿀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부모님은 박순천의 연기자의 길을 반대했다. 처음에는 연기 공부를 해서 교수가 되려고 했지만 서울예대 연기과에 들어가 탤런트 공채시험에 합격하면서 연기의 길을 걷게 되었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었어요. 저도 사실 연기자가 되려고 했던건 아니지만 동생들한테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 공채를 지원했는데 붙은거예요. 공채시절, 김종학(모래시계) 감독이 저의 자존심을 되게 상하게 했어요. 그래서 그만둘까 생각도 많이 했죠.

어느 날, 어머니가 김종학 감독을 만났는데 감독님이 그랬대요. 시집이나 보내라고. 능력이 없으니 시집이나 보내라고요. 그래서 오기가 생겼죠. 더 열심히 했어요.

그러자 김종학 감독이 절 캐스팅했어요. 어느 작품의 뒤풀이에서 김종학 감독에게 "아직도 시집가요?" 라고 물었더니 "응"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그 다음 작품에도 절 캐스팅 했죠. 메릴 스트립 같은 배우가 되라고 하시더라고요.

어머니가 제가 결혼하기 전 날 이런 말을 하시더라고요. "일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을 꺼면 늦지 않았다, 결혼하지 마라." 그 말을 잊을 수가 없어요. 살아보니 연기와 일 사이에서 적절한 선을 찾는 것이 힘들더라고요. 평생 엄마 말이 다 맞아..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스튜디오에 어머니가 직접 짜서 남편에게 선물한 스웨터를 들고 온 박순천. 사위를 위해 뜬 하얀 스웨터는 이런 저런 예쁜 패턴이 가지런하다.

박순천은 녹화 마지막에 읽는 어머니를 향한 편지에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을 가자고 약속도 했다. 부모님을 닮아 좋은 부모가 되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그리고 아빠에 대한 사랑의 말도 잊지 않았다. 출연자 중 처음으로 어머니를 위한 시 낭송을 준비했다. 배우 고두심이 선물해 준 시집 속의 시라고 한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정채봉

하늘 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 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BTN 이진경  btnnews@b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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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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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양옥 2021-05-25 22:14:39

    냐가 좋아하는얼굴과 말투. 몰랐었던 이름 박순천 유튜브에서 환갑이 넘었다고.. 첨엔 못알아봤는데.. 반가웠다.야무지게 사랑가득. 살고 있었네요. 또 한 번 인생의 지혜를 배웁니다   삭제

    • 미식가 2021-05-15 18:18:49

      전원일기에서 삐치고 질투하고
      지'할적에 화고죽이고 싶었음
      전원일기 연극이 아니더라도
      그런 스타일 꼴보기 싫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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