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1 운동 이후 일제하 한국불교계의 활동은 크게 두 흐름으로 전개된다. 식민지 불교정책의 핵심인 사찰령을 폐지하고 자주적인 종단을 건설하려는 노력과 한국 전통불교의 수행과 깨달음의 핵심인 선의 전통을 수호하려는 노력이었다.

일제하 한국 불교계의 주체적인 움직임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하고, 이런 움직임은 선학원 설립으로 완성됐다. 선학원은 총독부의 사찰령을 피할 수 있는 '재단법인'을 설립하고, 한국불교의 비구종단으로서의 법맥을 이어왔으며, 항일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됐다.

2011년 11월 30일은 선학원이 설립된 지 꼭 90년이 되는 날이다. 일제의 저항기와 불교정화의 격동기를 거치며 현 조계종단의 산실이 되었던 선학원이 설립 100주년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선학원 백주년기념관 조감도.

◆ 선학원의 창건

1910년 8월 29일. 잊지 못할 이날을 우리는 경술국치라 부른다. 이후 1910년 10월, 원종(圓宗) 대표 이회광이 일본의 선종 종파인 조동종과 일본 동경에서 연합맹약 전문 7조를 체결한 데 반대하며 1910년 11월 진응·한영·종래스님 등이 광주 증심사에 모여 임제종을 발기한다.

1911년 2월 3일 한국불교를 일본 조동종으로 병합하려는 원종의 시도에 저항하기 위해서 조계산 송광사에 ‘조선임제종 임시사무소’를 설치하고, 관장에 경운원기, 관장대리를 만해스님이 맡는다.

1911년 5월 3일 일제는 사찰령을 제정하고 전문 7조와 부칙을 공포하면서, 이듬해인 1912년 5월 2일 ‘조선임제종 임시사무소’를 ‘조선임제종 중앙포교당’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사동(지금의 인사동) 28통 6호로 이전하게 된다. 하지만 조선 총독부는 ‘조선임제종 중앙포교당’ 간판을 내리게 하고 임제종이라는 종지칭호의 사용을 금지하는 등 임제종의 활동을 제지한다.

△1921년 설립된 선학원 중앙선원.

1921년 11월 30일 서울 안국동에 ‘조선불교선학원’이 창건되었다. 선학원은 사찰령 발표 이후 일본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어 가는 것을 개탄하고, 불조의 정맥을 굳게 계승키 위해 창설된 선종의 중앙기관이다.

처음 발기인은 남전, 도봉, 석두, 용성, 성월, 만공스님 등이 주도해, 총계 25,500원의 자본금으로 1921년 8월 10일에 공사를 시작하여 불과 3개월 만인 11월 30일에 준공했다.

‘사(寺)’나 ‘암(庵)’이 아닌 ‘선학원’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당시의 모든 사암이 총독부의 사찰령과 사법에 종횡으로 묶여 암자의 주지 취임까지 총독부의 인가를 받아야 했고, 모든 행사와 동·부동산의 동태 변동상황까지 낱낱이 사찰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총독부의 통치를 피하려는 방편이었다. 또 다른 의도는 참선을 대중에게 가르쳐 보급한다는데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학원의 설립 조사. 남전한규, 도봉본연, 석두보택, 성월일전, 초부적음, 만해용운, 용성진종, 만공월면(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듬해 1922년 3월 용성, 남전, 석호, 성월, 만공, 용금, 학명스님을 비롯해 79명은 시들어가는 선종의 부활과 선승들의 상호부조 내지는 자립활로를 개척하기 위해 ‘선우공제회(禪友共濟會)’를 조직하고, 창립총회를 개최한다.

선우공제회 본부를 안국동 선학원에 두고 서무부, 재무부, 수도부의 3부를 중앙에 두고, 백양사, 마하연, 정혜사 등 각 사찰에 지부를 두어 유대를 긴밀히 했다.

중앙의 수도부 이사로 만공스님, 서무부 이사로 적음스님, 재무부 이사로 석두스님 그리고 성월, 학명, 도봉 등 20여명의 평의원을 선출하여 수도와 제반 사무를 관장하게 했다.

◆ 재단법인으로의 설립

조선불교 선리의 수행과 연구, 승려와 일반 신도에게 정신적 수양을 베풀기 위한 각종 시설을 하기 위해 선학원은 법인을 구성하게 되었으며, 재단법인이 설립됨으로써 선학원은 명실공히 중앙선원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선학원은 1921년 창건 이후 선학원 자체에 의한 자력구제 방안을 꾸준히 강구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재단법인의 설립으로 이어진 것이다.

1926년 선학원은 재단법인 설립요건을 모두 갖추고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이란 명칭으로 조선 총독부에 설립허가신청을 한다. 하지만 총독부는 설립허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당시 총독부는 선학원의 저항운동을 강력히 탄압하고 있었다. 비록 선학원 명칭 대신 저항운동과 관련이 없는 ‘참구원’이란 공문서상 명칭을 사용했지만 총독부는 이런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1931년 3월 선학원에서 개최된 제1회 전국수좌대회.

적음스님은 선학원을 재건하기 위해 1931년 3월 전선수좌대회(全鮮首座大會) 소집문을 발송한다. 1931년 3월 23일 선풍진작과 납자들의 결속을 위하여 선학원에서 전선수좌대회(全鮮首座大會)를 개최하고, 선방 수좌들의 보다 나은 공부를 위해 청정사찰 할애 및 중앙선원 설치 등의 건의안을 작성한다. 이 수좌대회는 재건된 선학원에서 개최된 최초의 수좌 모임이다. 같은 해 10월 6일 <선원(禪苑)>을 창간한다.

1933년 8월에 만공스님 등 15명을 출자자로 한 재단법인 설립허가 신청서를 총독부에 접수하고, 총독부는 1년 4개월이나 허가를 미루다 1934년 12월 5일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 설립을 허가한다.

초대 이사장 만공스님, 부이사장 한암, 상임이사 적음, 이사 남전, 성월, 감사 서호, 탄옹, 선학원 원장 성월, 고문 경운스님이 임명됐다.

이로부터 선학원은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지키려는 애국불교인들의 본거지기 되고 안식처가 되었다. 사부대중이 끊임없이 운집했고, 만해스님은 다년간 이 선학원에 주석하기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만해스님의 다례재는 오늘까지 선학원에서 치뤄지고 있다.

선학원은 하안거와 동안거의 참선만이 아니고 대중법회를 자주 열어 불교인의 의식을 일깨웠다. 선학원이 법인 인가를 받지 못했다면 대중법회는 물론 활기있는 움직임을 전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모든 집회는 총독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1941년 2월 26일, 고승 34명을 초청해 개최된 유교법회.

1941년 2월 승풍 진작을 위한 고승 34명을 초청해 유교법회를 개최한다. 이 유교법회에는 만공, 석상, 서응, 묵담, 한영, 동산, 운허, 청담, 석주, 한암스님 등 청정비구 34명이 범망경, 유교경, 조계종지에 관한 설법을 했다. 유교법회 후 비구승으로 범행단(梵行團)을 조직하고 선학과 계율의 종지를 선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 정화운동의 시작

광복 이후 선학원은 1953년 ‘선리참구원’이라는 명칭을 버리고 창건 당시의 명칭으로 회복하여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법인 명칭을 변경했다.

그동안 총독부의 한국전통불교 소멸 정책에 동화되어 대처하고, 참선수행승을 학대하던 중앙교무원 측에서는 광복의 시세에 눌리고 선학원을 거점으로 하는 수행승들의 요구에 굴복하는 듯 18개 사원을 독신 수좌들의 수행도량으로 돌려주기로 하지만 결국 거부한다.

결국 1954년 6월 24일 선학원에서 불교정화운동 발기인대회를 개최(위원장 : 금오, 부위원장 : 적음)하고, 같은 해 9월 제1차 불교정화 임시종회를 개최했다.

△1954년 제1차 비구승 대표자대회. 1954년 8월 24일부터 25일까지 정화를 위하여 개최된 이 대회에서는 ‘조직정비’, ‘종헌제정’ 등을 논의하고, ‘정화원칙’을 결정했다. 또한 정화추진을 위한 각 분야별 대책위원을 선출했다. 맨 앞줄 왼쪽부터 청담, 인곡, 적음, 금봉, 동산, 금오, 효봉, 향곡, 자운스님.

1954년 10월 15일 조계종 종정 만암스님은 정화 원칙은 찬동하나 방법론은 반대한다는 환부역조론(煥父易祖論) 성명을 발표하고, 선학원에서 서울신도대회 개최, 교단정화를 추진하는 비구승단을 지지하기로 결의한다.

1954년 11월 3일 선학원에서 제2차 불교정화 임시종회 개최(종정 : 동산, 부종정 : 금오, 종무원 도총섭 : 청담, 아사리 : 자운, 재무부장 : 서운 선출)하고, 이틀 뒤인 5일 선학원에서 출발한 청담, 동산, ·효봉스님 등 비구 80여명은 태고사(현 조계사)에 진입해 점거한다.

대한불교 조계종 중앙종무원 및 조계사 현판을 내걸고, 종정에 동산스님, 부종정에 금오, 도총섭 청담스님 명의의 성명서를 발표한다.

광복 이후 일제불교의 청산을 위한 정화운동에 선학원은 정화운동 소요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과 인천의 부동산을 매각하는 등 자금을 지원하기도 한다.

이런 정화운동의 결과, 1962년 4월 11일, 통합종단 대한불교 조계종이 발족하게 된다.

하지만 통합종단 조계종은 종단 출범의 산실이었던 선학원을 흡수 통합하려 하면서 조계종과 선학원은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 이 갈등은 1996년 당시 조계종과 선학원 화합을 위한 공동합의문을 발표하면서 마무리되는 듯 했으나 1998년 2월 다시 조계종 총무원은 선학원 소속 분원장 및 도제의 각종 종무직 취임 불가와 조계종의 승려자격정지, 교육기회 제한 등 3가지 규제사항을 통보하면서 조계종-선학원의 합의가 무산됐다.

이후 2002년 선학원-조계종 합의문에 각각 서명함으로 관계가 정상으로 회복됐다. 하지만 지난 2002년의 선학원-조계종의 합의가 조계종의 법인법 제정 움직임 등으로 다시금 위기로 치닫고 있다.

△1971년 선학원 중앙선원에서 개최된 보살법회.

◆ 설립 100주년‥청사진 있어야

지난 23일 선학원 전국분원장회의에서는 승려노후복지, 포교전략의 변화, 조계종단과의 관계 등 현재 선학원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와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고민을 공감했다.

법진스님은 이날 분원장회의 법어에서 “현시대는 IT정보화, 저출산 고령화 사회 등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 더 이상 선각자들의 업적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새로운 포교전략을 과감하게 구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진스님은 또 “‘민족 불교의 성지’이자 ‘정화 불교의 산실’인 선학원의 설립 100주년을 목전에 두고 있다”며 “이번 행사에서 선학원과 한국불교의 발전을 위해 사부대중들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선학원은 현재 100주년을 위한 준비로 ‘백주년 기념관 건립 불사’를 준비 중이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분원장 스님들도 “백주년기념관 건립은 선학원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며, 각 분원에서 성실히 돕겠다. 모두 합심해 불사가 잘 회향되도록 하자”며 기념관 건립 불사 필요성에 공감하고 동참의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1980년대 현재 선학원에서 운영한 유치원 모습.

일제 저항기와 불교정화의 격동기를 거치며 현 조계종단의 산실이 되었던 선학원은 조계종단과는 다른 길을 가며 어린이 유치원과 시민선방 등 불교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을 경주해 왔다.

하지만, 지난 10여년간 불교계와 대사회적인 어젠더를 주도하지 못한 선학원은 일제에 맞서 정통불교를 수호하고, 정화운동의 중심으로서 조계종단 출범의 산실이란 과거의 향수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에 맞는 선학원으로의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경목 기자

하경목  btnnews@btn.co.kr

<저작권자 © BTN불교TV,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