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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한 줄기 빛으로”..종산스님 마지막 가는 길

 

대강백 백운스님이 먼 길로 떠나신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울리는 휴대폰이 단잠을 깨운다.

전날까지 백운스님 영결식 기사 마감을 위해 생전 스님 육성 법문들을 훑어보고, 다른 기사들을 정리하느라 주말 근무는 물론 야근까지 이어진 터라 더욱 야속하기만 하다.

얼마 전 영단의 꽃 장식에 대해 물어본 화엄사 사무장이다.

불안한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는다.

“화엄사 조실 혜광당 종산 대종사님이 오늘 새벽 5시 원적하셨습니다.”

회사에 큰스님의 원적 소식을 알리고 일어나 짐을 싸서 지리산으로 향한다.

 

 

화엄사를 그 동안 자주 드나들었지만 아쉽게도 화엄사의 가장 큰 어르신이었던 종산스님을 직접 뵐 기회가 없었다.

긴 숙환으로 청주 보살사에 주석하셨다는 것과 결제 때마다 화엄사 스님들에게 화두참구에 매진하라는 말씀을 하셨다는 이야기 정도가 전부.

마음이 급했는지 어느 새 화엄사 종무소에 들어서면서 스님의 행장부터 찾는다.

1924년 담양에서 태어난 스님은 광주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려했단다.

의과대학 시절 가깝게 지낸 친구가 세상을 떠나자 친구의 49재를 지내러 간 강진 만덕선원.

부처님  인연으로 그 곳에서 운명처럼 도광스님을 비롯한 당대 선지식들을 만나게 된다.

스님들의 수행하는 모습에 감동해 종산스님은 결국 의사를 그만두고 출가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의과대학에 보내 공부시킬 정도의 재력가 집안에서 의사를 그만두고 스님이 되겠다고 했으니 반대가 얼마나 심했을까.

하지만 스님은 부처님처럼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납자의 길로 들어섰다.

특히 범어사 정진 당시 용맹정진을 위해 세 명의 도반들과 널빤지에 못을 박아 앞에 세워 놓았다는 이야기는 후학들에게 아직도 회자된다고 한다.

 

 

쿵쾅쿵쾅 못 박는 소리.

화엄사 화엄원 대방.

영단을 만드는 처사들에게 주지 덕문스님의 다양한 주문이 계속된다.

잠시 후 스님은 화엄사 소임자 스님들과 함께 분향소 설치 및 장례 절차 등에 관한 회의를 시작한다.

하나부터 열 까지 덕문스님이 여러가지 준비사항들을 직접 챙긴다.

평소 어른스님들 잘 모시기로 알려진 것은 알고 있었지만 분향소에 들어갈 문구와 폰트, 글자 크기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종산스님이 원로회의 의장이었을 때 사무처장 소임을 맡아 모셨던 각별한 인연도 스님 마지막 가는 길에 정성을 쏟은 이유 중 하나였을 터.

 

 

언제 회의를 마쳤는지 덕문스님은 화엄원 마루에 걸터앉아 멀리 지리산을 바라본다.

“바쁘시죠 스님.”

“일찍 왔네요. 왜 이렇게 일찍 와요. 오늘은 아무도 안 오실텐데.” 

특유의 환한 미소지만 평상시와는 다른 느낌이다.

“큰 스님은 평소에 어떤 분이셨어요? 스님.”

“큰 스님은 인욕, 하심, 자비를 철저하게 수행의 근본으로 삼으라고 하셨어요.”

“몸이 편찮으실 때도 의복을 정제한 후에 손님을 맞이하실 정도로 본인에게 엄격하시면서도 일반인들에게는 항상 자애로운 분이셨고요.”

“특히 소임자는 철저하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소임을 보아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가장 기억나네요.”

덕문스님이 소임자들에게 입버릇처럼 강조하고 또 스스로를 경책하고 있는 '공심'.

실은 종산스님께서 덕문스님에게 남겨주신 큰 가르침이 아니었나 싶다.
 


이튿날 아침.

간밤에 지리산도 종산스님의 입적소식을 들었는지 굵은 비를 하루 종일 뿌리며 함께 슬퍼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각 층에서 보내온 조화가 줄지어 섰다.

화엄사 스님들은 애초에 조화를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코로나19로 더 어려워진 화훼 농가를 위해 받는 것으로 결정했단다.

작은 결정에도 보이지 않는 배려가 묻어난다.

이틀째라 본격적으로 분향소에 손님들이 찾아 올 터.

교무국장 덕홍스님이 종무실장, 사무장과 함께 분향 준비에 소홀함이 없는지 크로스 체크에 나선다.

화엄사 대중스님들과 말사 주지 스님 및 종회의원 스님, 각 소임자 스님 등.

이른 아침부터 분향소 앞에 총 출동해 전날 회의를 통해 부여받은 지객, 인례 등의 업무를 차근차근 시작한다.

 

 

무진스님과 혜인스님은 첫 관문인 일주문 앞 매표소에서 손님을 맞이한다.

학인 스님들은 주차장 입구에 배치돼 조문객들을 위쪽 분향소로 안내하고 타 교구 스님들과 교류가 잦은 종회의원 대진, 연규, 우석스님이 분향소 입구에 대기한다.

 

 

다각실에는 비구니 도운스님이 배치 됐고 원로스님 방에는 선타스님이 손님 맞을 준비를 마쳤다.

덕제스님은 영결식장과 다비장 준비를 대승스님을 비롯한 강사스님들과 대중스님들은 돌아가며 빈소를 지킨다.

 

 

선등선원장 본해스님을 비롯한 선원스님들도 조석으로 금강경을 독송하며 종산스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맏상주 덕문스님을 중심으로 총무국장 관문스님을 비롯한 모든 화엄사 문도 스님들이 똘똘 뭉쳐 장례에 필요한 여러가지 일들을 서로 나누고 각자 해야 할 일을 숙지했다.

해덕스님을 비롯한 종무소 직원들도 각자 업무를 분장해 스님들을 지원하고 영결식과 다비식 준비, 그 외 각종 인쇄물 제작 등 업무에 힘을 쏟았다.

종단장으로 엄수된 5일 동안 화엄사 사부대중은 그렇게 큰스님 마지막 가는 길에 소홀함이 없도록 일을 나누고 각자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장례 기간 동안 서울에서 내려와 분향소 취재를 담당한 기자는 덕문스님을 중심으로 체계적이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화엄사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라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굵은 빗방울이 분향소 지붕위로 뚝뚝 떨어진다.

빗속을 뚫고 조계종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가장 먼저 분향소를 찾았다.

 

 

자승스님은 “총무원장 소임 때 원로회의 의장을 지냈던 종산대종사를 늘 존경했다”며 “조계종을 가장 안정적으로 이끌었던 종단의 어른이었다”고 스님을 회고했다.

 

 

조계종 전 총무원장 설정스님도 분향하고 만장에 현각대사의 증도가 구절을 직접 적어 종산스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하도록 했다.

화엄문도를 대표하는 문장 명선스님도 스님을 추모하고 종단의 위계와 질서를 바로세운 종산스님의 업적을 기렸다.

마곡사 원경스님을 비롯한 각 교구본사 주지 스님들과 불국사 성행스님을 비롯한 종회의원 스님들도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그렇게 4일 동안 제방 스님들이 지리산 분향소를 찾아 종산스님을 조문하고 애도했다.

 

 

드디어 영결식 당일 아침.

꽃으로 장엄한 영단 위로 스님의 영정 사진이 보인다.

불진을 잡은 손의 손가락 마디가 한 없이 얇아 보인다.

입적하기 전까지 종산스님은 긴 숙환으로 거동이 불편하셨다고 전해졌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5년 동안 시봉했던 자비행 보살은 가슴 깊이 간직해 온 스님 생전 일화를 들려줬다.

 

 

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스님의 공양을 준비해 방에 가져다 드리고 시내 시장에 다녀왔단다.

그런데 공양을 드시지 않고 계셔서 “스님 왜 공양 안 드셨어요?” 여쭤보니 “응, 이제 보살 왔으니 먹어야지” 해서 나가려고 하는데 밥상 위에 수저와 젓가락이 보이지 않더란다.

경을 칠만도 한데 수저 얘기 없이 화 한 번 안냈다고 하니 감히 스님의 수행력을 짐작해 본다.

종산스님이 원적 한 직 후 부터 내리던 비가 영결식 전날부터 그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하늘이 맑아졌다.

 

 

조계종 종정 진제 대종사를 비롯해 총무원장 원행스님, 김영록 전남도지사 등 전국에서 온 스님들과 불자, 조문객들로 영결식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조계종 전계대화상이자 BTN불교TV 회장 성우 대종사도 영결식에 참석해 종산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BTN불교TV 구본일 대표도 중계차를 화엄사에 내려 보내 방송을 통해 전국의 불자들과 함께 종산 대종사를 추모하도록 했다.

영결식에서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육신을 치료하는 의사의 길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고 치유하는 납자의 길을 가겠다며 발심 출가하신 대종사의 청년 시절은 정진행, 그 자체였다”라고 스님을 추모했다.

영결식을 마치고 종산스님을 떠나보내야 할 시간.

스님의 법구는 화엄사 보제루를 출발해 일주문 앞에 잠시 멈춰 섰다.

노재를 지내고 스님과 인연 깊었던 화엄사와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지원스님과 삼묵스님이 인로왕번과 만장을 높이 들고 앞장섰고 스님의 법구는 화엄사 주차장에 마련된 연화대로 이운됐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스님 법구는 이내 거화되고 불꽃을 피우며 화연으로 한참을 나투더니 마침내 한 줌 재로 사했다.

 

 

스님은 그렇게 화엄사 후학들의 지극한 배웅을 뒤로 하고 영원한 자유를 누리며 저 멀리 해탈의 길로 떠났다.

“문득 깨어보니 이번에도 잠깐 졸았구나.
부끄럽게도 왜 지금에서만 아는가!
다행히 기둥에 난 풀도 사람마음 꽃인걸 알아서
염치없지만 또 보고 싶겠네!”

 

 

마지막까지 부족하고 부끄러운 수행자라 스스로를 경책한 혜광당 종산 대종사.

‘혜광’이라는 스님 법호처럼 후학들 가슴속에 ‘지혜로운 한 줄기 빛’으로 영원히 남았다.

 


김민수 기자  btnnews@b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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