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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3〕차세대 세계유산 '월인석보'

[앵커]

한글날 기획보도 마지막은 훈민정음 창제 이후 편찬된 불경언해서인 월인석보를 조명합니다. 월인석보는 세조의 불심과 집념을 바탕으로 신미대사 등 불교계 협력이 더해져 완성됐는데요. 훈민정음 간행본의 결정판이자 조선 초기 불교문화의 정수로 가치를 더합니다. 이동근 기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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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10개월 만에 완성된 석보상절과 부처님의 진리가 담긴 월인천강지곡이 합편돼 탄생한 월인석보.

세조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 세종과 아들 의경세자를 향한 그리움을 불교로 치유했고 심혈을 기울이며 두 서적의 내용을 수정, 증보해 1459년, 월인석보를 세상에 내놓게 됩니다.

먼저 월인석보는 조선 초기 불교문학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가치를 더합니다.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정진원 교수에 따르면 일반적인 경전의 경우 부처님 설법 뒤에 게송이 이어지지만 월인석보는 세종대왕의 부처님 찬탄 노래인 월인천강지곡을 앞세우고 석보상절을 뒤로 붙여 새로운 산문 순서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또, 크고 굵은 한문이 먼저 나오고 한 칸을 내린 뒤 훈민정음으로 내용을 풀어 쓰는 형식과 부처님 등 높여야 할 인물의 경우 줄을 바꿔 작성한 특징도 엿보입니다.

정진원/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
(월인석보는 게송인 월인천강지곡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석보상절 산문이 나중에 나옵니다. 그래서 이를 저는 조선식 대장경의 최초 경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합편을 거친 월인석보는 전혀 새로운 문헌으로 재탄생하며 훈민정음 간행본의 결정판으로 남아있습니다.

한자와 독음 표기의 위치를 비롯해 반복되는 문장이 거의 없고 경, 율, 론 삼장을 망라해 많은 내용을 첨삭하는 등 상당한 변화가 이뤄진 겁니다.

특히 훈민정음 보급에 불교가 막대한 역할을 했음을 간접적으로 일러주며 당시의 글자와 말이 그대로 보전돼 세계기록유산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입니다.

정진원/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
(월인석보 저변에는 불교경전을 훈민정음으로 완성하겠다는 세조의 의지가 돋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세조의 불심과 불교계 협력은 월인석보 편찬의 핵심요소로 자리합니다.

세조는 부모를 여윈 슬픔과 살생의 괴로움 등을 벗어나고자 불교라는 귀의처를 만났고 석보상절의 의의를 통해 우리말로 부처님 일대기와 경전을 엮어 새기니 쉽게 익혀 삼보에 의지하길 바란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신미대사를 비롯한 10명의 스님들에게 자문을 구했다는 주석과 함께 나를 구원하는 일이 곧 남을 구원하는 자리이타 정신도 담겨 있습니다.

정진원/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
(세조가 잠자는 것도 잊고 먹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 정말 열과 성을 다해서 월인석보를 만듭니다. 그리고 자문단 이름이 나옵니다. 그 첫 번째가 신미스님입니다.)

훈민정음의 위대한 산물이자 조선시대 불교문학의 정수인 월인석보는 시대를 대표하는 기록유산으로 한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빛내고 있습니다.

BTN 뉴스 이동근입니다.


이동근 기자  btnnews@b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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