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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없는 연화장세계, 화엄사 구층암

 

뿌연 하늘.

 

또 미세먼지가 아침부터 도시에 깔린다.

벌써 며칠째 계속되니 이제는 숨이 막혀온다.

빠르게 도시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리면 멀리 솟은 봉우리를 만난다.

 


답답할 때면 찾는 곳, 지리산. 그리고 화엄사.

각황전에 들러 부처님을 뵙고 대웅전 뒤로 난 길을 따라 대나무 숲으로 들어서면 선방 스님들의 포행길인 ‘묵언의 길’을 만난다.
 


노고단 골짜기를 돌아 내려오는 시냇물 소리를 음악 삼아 들으며 걸음을 옮기면 금세 구층암이 눈에 들어온다.

 


입구에는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부서진 돌탑이 비스듬하게 서서 방문객을 맞는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탑 중간에 새겨진 부처님이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며 반갑게 미소를 짓는다.

 


족히 몇 백 년은 넘어 보이는 탑.

갈라지고 깨져서 떨어져 나가기를 반복하다 대충 윗부분을 쌓아서 올려놓은 듯하다.

 


바로 옆 바닥에 탑의 나머지 기단 부분들이 널브러져 있는데 오히려 그 모습이 자연스러워 운치가 있다.

천불전을 앞에 두고 왼편 차방을 겸한 요사채.

 


이곳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오랫동안 간직한 구층암의 매력에 더욱 빠져들게 된다.

모과나무를 대충 잘라 통째로 옮겨 논 듯 한 기둥에 단청 칠 한번 하지 않은 처마와 포.

 


세월의 풍파로 이제는 반질반질해진 마룻바닥이 삼박자로 어우러져 고풍스럽게 느껴진다.

요새말로 ‘엔틱’하다.

이렇게 구층암의 자연스러운 매력에 빠져들 때쯤 차방에서 스님은 들어와 “차라도 한잔 하고 가시요”라고 무심하게 객들을 청한다.

덕제스님.

 


방안으로 들어서면 크게 보이는 액자의 글씨 ‘심청사달’


결국은 역시 ‘마음’이라는 화엄사상의 귀한 가르침을 이곳 구층암에서 다시 만난다.

미리 앉아 차담을 나누는 객들과 또 대충 자연스럽게 섞여 자리를 함께하고 담소를 나눈다.

야생차 이야기와 모과나무 기둥, 천불전의 역사 등 구층암과 관련된 질문들과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서 스님은 ‘얼마나 많은 객들과 이런 비슷한 질문을 몇 번이나 듣고 또 답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온다.

그래서였을까.

덕제스님의 말투가 툭툭 던지 듯 짧다는 느낌이 든 것이.

 


방 안에는 차를 완성했던 연도와 이름 등이 적힌 라벨을 붙여 놓은 ‘차독’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어린잎을 따서 덖어내고 유념의 과정을 반복해 말리기를 수차례.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 공력을 들여 만들었기에 뿌듯한 마음을 담아 한자 한자 써내려갔을 메모다.

사연을 담은 독들을 살펴보고 있자니 등 뒤로 스님의 농담 아닌 농담이 들린다.

 


“저것들이 얼른 팔려야 내 빚도 갚는디.”

벌써 12년째 구층암에서 화엄사를 대표하는 차를 만들고 있는 덕제스님은 ‘차박사’다.

“녹차는 차가운 기운 때문에 열을 다스려 감기 걸렸을 때 마시면 좋고, 가끔 끝 맛이 떫게 느껴지는 녹차는 차나무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렇다”라는 것을 스님에게 주워들었다.

 


따뜻한 차 몇 잔을 마시니 그때서야 도시에서부터 나를 따라온 이 ‘미세한 놈’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다.

스님과 짧은 대화를 몇 마디 주고받고 나서 이제 비밀 장소이자 최종 목적지로 향한다.

 

 

마당에 겨우내 참았다 핀 매화꽃과 졸졸졸 흐르는 수각에 눈길 한번 주고 천불전으로 향한다.

돌로 쌓여진 축대.

 


그 중 가장 낮은 곳을 넘어 동산위에 오르면 천불전 처마 밑 토끼와 거북이가 또 반갑게 인사한다.

야생 차나무와 동백나무를 헤치고 조금 더 가면 드디어 기와지붕 위로 펼쳐진 지리산 ‘화엄세계’를 만난다.

 


병풍처럼 펼쳐진 지리산 봉우리와 능선들.

어디하나 막힌 곳 없이 가슴이 뻥 뚫린다.

미세먼지 없는 시원한 공기와 바람, 그리고 햇살에 비친 풍광들.

 


이곳이 바로 각황전 비로자나부처님이 계신다는 연화장세계는 아닐는지.

이렇게 비밀의 장소를 공개한 마당에 구층암에 대한 한 가지를 더 공개한다.

 


해마다 음력 삼월 초하루부터 삼짇날까지 삼일 간, 구층암에서는 지리산 산신님께 기도드리는 산신대재를 봉행한다.

이 산신대재는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부터 전해내려 오는 토속신앙과 불교가 만나 독특한 문화로 전해 내려오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이제는 거의 재난 수준의 미세먼지.

매화 꽃 피고 산새들 지저귀는 지리산 자락 구층암에서 야생차와 아름다운 풍광으로 잠시 털어내는 것도 방법이 되지 않을까.


김민수 기자  btnnews@b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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