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그를 시사만화의 대부라 부른다. 1988년 한겨레신문의 ‘한겨레 그림판’을 통해 시사만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한 컷 속에 대한민국의 역사를 담았다. 백발의 단발머리에 장난스러운 웃음이 매력적인 만화가 박재동을 ‘전무송의 나의 삶 나의 불교’에서 만나봤다.

△ 만화가 박재동. 입고 있는 자켓의 왼쪽 포켓에 나란히 꽂혀 있는 펜들만 봐도 그가 만화를 그리는 작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현재는 손바닥 크기의 화첩에 만화를 그리는 손바닥 아트를 선보이고 있다.

초가집, 머리 땋은 처녀, 갓 쓴 노인네... 그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은 이러하다. “얼마 전에 아프리카 세네갈에 다녀왔는데 거기가 딱 내 어릴 적 시절과 똑같더라고. 1년에 한 두번 먹을 수 있었던 눈깔사탕, 껌도 하나 씹으면 벽에 붙여서 한 일주일을 씹었었지. 미꾸라지도 잡고, 고동도 잡고...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는 건 너무 행운이었지.”

그에게 그림의 세계를 열어 준 것은 외삼촌이었다. 외삼촌은 하얗고 좋은 도화지 백장과 크레용을 사다주면서 하루에 한 장씩 그려라 했다. 처음에는 풍경화를 한 장씩 그리다가 지겨워 져서 탱크, 비행기를 만화로 그리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그는 비로소 그림을 통해 돈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벌게 되었다.

“어느 날 반 친구 중에 한 명이 진지하게 그러더라고. 원래 진중한 놈이 아닌데... ‘야, 권총 하나 그려줘. 20원 줄게.’ 너무 감동적이었지. 드디어 날 프로로 인정하는구나하고. 이게 돈을 받으니까 더 최선을 다해 그리게 되더라고. 그 친구가 유년시절 나의 첫 번째 손님이자 마지막 손님이었어요.”

초등학교 전교 1등, 우등생으로 명문중학교를 들어갔지만 미술반 활동을 하면서 영화랑 만화를 실컷 보러 다니다 결국 고등학교는 재수를 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또 미술반 활동에 충실, 그러다 보니 학교 성적은 결국 꼴등이 되어있었다.

“꽁지를 하니까 아버지가 학교에 불려오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딱 그러시더라고. ‘1등이 있으면 꽁지도 있지.’ 이장호 감독 있지? 그 아버지는 시계를 풀어줬대. ‘꽁지는 힘든거다.’ 이러면서. 맞아. 꽁지하기 얼마나 힘든데!”

오~ 캡틴, 오~ 마의 캡틴

꼴등까지 했는데 서울대 회화과를 들어갔다 하니 역시 난사람은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대학 졸업 후 휘문 고등학교에 미술교사로 부임을 했다.

“나름 컨셉이 있었는데 ‘아이들을 미술시간만이라도 자유롭게 하자.’였어요. 형 같이 하자. 그래서 종이비행기 접어 정신여고까지 날리기, 눈 감고 마음속으로 그림 그리기, 돌멩이 그리기 등 자유로운 수업을 했지. 사실 학교에서는 안 좋아했어요. 학생들만 좋아했지.”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하면서 느낀 건 한국 학생들이라면 자연스럽게 거쳐야 하는 ‘학교 12년, 그 황금 같은 청춘의 시기가 너무 아깝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학교를 만드는 것,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것이었다.

“공부도 재미있게 해야 해요. 정체성, 자기 적성도 좀 찾아야 하는데. 그 나이 때는 뭘 해야 좋다는 건 금방 알 수가 없어요. 오전에는 학과 생활, 오후에는 특별수업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적성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는데... 지금의 학교에는 학생들 스스로가 자기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없어요.” 박재동은 아이들이 자신이 하는 것에서 기쁨을 맛봐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그림이다 하면, 그림에 몰두, 몰입을 하면 굉장한 기쁨을 느껴야 해요. 첫째 다른 것이 부럽지 않아야 하고, 둘째 시키지 않아도 하고, 흔들리지 않는 기쁨을 느껴야 하고...이런 걸 느껴야 행복한 겁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이 생각난다. 현재를 즐기라던, 키팅. 한국 교육계에서는 아직도 영화 같은 일이라고 여겨지지만 그의 학생들은 이미 한국판 키팅을 만난 것이다.

그런 그에게도 아들이 있다.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 내가 프랑스에 갔다가 선물을 하나 사왔거든. 봉투 뜯는 장난감 칼. 그랬더니 아들이 그러더라고. ‘아빠, 실용적인 거!’ 아~ 그 때야 이 녀석이 고등학교 1학년이구나! 친구로 대해야겠구나!

이제 친구로 대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이 놈이 날 시험에 들게 하더라고. 하루는 학교에서 담배 피다가 걸려서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어. 그런데 친구로 대하기로 결심했는데 담배를 피지 말라고 하기가 그렇더라고. 그래서 선생님한테 그랬지. ‘저도 고 1때 담배 폈어요.’ 선생님이 웃더라고. 하하하.
아들이랑 친구하니 좋은 건, 단 둘이 살가운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고, 나한테 고민에 대해 털어놓니 그 맛이 너무 좋았어요. ”

시사만화의 대부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대부

박재동은 1988년 ‘한겨레그림판’에 이름을 올렸다. 80년대 한국은 언론이 정부에 의해 통제 당해 특종이라는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국민들은 사실, 올바른 정보에 목말라 있었다. 그 쯤 국민주로 한겨레가 탄생되었고 ‘시사만화가 모집’을 모집했다. 아는 동생의 권유로 인해 응모했는데 덜컥 합격을 했다. ‘시사만화가’로의 삶이 시작되었다.

“시사만화라는 것이 한 컷에 그 날 일을 다 담아내야 하는건데... 마감 시간이 다 되도록 생각이 안 나면 큰 일이예요. 그런데 시간에 쫓기게 되면 내 자신이 불쌍했는지, 아이디어가 나오더라고. 뭐, 마감쳤는데 사건이 바뀌기도 하고, 그럼 20분 만에 다시 바꿔 그린 다음에 신경과로 직행한 적도 있었지.

△1996년 2월 1일 자 '한겨레 그림판'

시사만화를 그리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였다. 1996년 1월 31일 ‘서태지와 아이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2월 1일에 한 컷 만화에 그들을 담았다. 그리고 이튿날 한 학부모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용인 즉은 중학교 2학년인 딸이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 이후에 밥도 안 먹고 말도 안하고 학교도 안 간거야. 걱정인 된 어머니가 딸에게 좀 위로가 될까 싶어 내가 그린 한 컷 만화를 스크랩해서 딸애한테 준거지. 그런데 딸이 그 만화를 보고 씩 웃더래. 그리고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나에게 감사하다며 전화를 한 거였어요. 딸이 그 만화를 보고 마음이 풀렸다고.”

△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 200만 관객을 돌파한 '마당을 나온 암탉'

“우리나라 문화는 스토리가 중요해요. 그동안은 기술력은 있는데 스토리가 탄탄하지 않았거든. 일단 ‘마당을...’은 기본 스토리가 탄탄해요. 그리고 우리 회사 사람들이 손재주가 좋아요.” 역시나 직원을 향한 칭찬도 빼놓지 않는다.

“내가 우리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만화가가 되려 하지 말고 지금 네가 만화가라 생각하라.’예요. 뭘 해야 되겠다 생각하면 지금 바로 하면 됩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한 거예요. 물론 하다보면 재미가 없을 때도 하긴 해야죠. 할 수 없잖아요~! 그렇지만 일단 할 일을 잘 해내면, 그 할 일 할 때가 제일 행복한 겁니다.”

 

BTN 이진경  btnnews@b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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