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사길과 화계사길에 이어 서울 성북구 보문사길도 ‘지봉로’로 변경되면서 또다시 지역 구청과 마찰을 빚고 있다.

보문사는 지난해 ‘보문사길’에서 ‘지봉로’로 도로명 변경이 예비고지 됐을 때 이미 성북구청과 서울시에 이의신청을 했었다. 하지만 해당 구청과 서울시로부터 떠넘기기 식의 회신을 받았다. 급기야 도로명은 지난달 ‘지봉로 19길’로 결정고지 됐다.

△서울 성북구 보문동 보문사 입구 도로명이 지봉로 19길로 변경 고지됐다. 사진=행정안전부 새도로주소 안내 홈페이지

심장섭 보문사 종무실장은 “작년에 성북구청과 서울시에 ‘지봉로’ 부여에 이의신청을 했었지만, ‘보문사길’로 환원은 불가하다고 회신이 왔었다”면서 “성북구는 서울시로, 서울시는 성북구로 책임을 떠넘기고, 담당자는 법 개정을 기다리라고만 했다”고 격분했다.

심 실장은 또 “일제의 잔재를 없애려 새주소 체계를 시행한다던 정부의 애초 취지는 어디로 가고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라면서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강제로 창씨개명을 요구한 행위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행위”라고 말했다.

△대웅전 안에 봉안된 삼존불과 후불탱화. 후불탱화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98호로 지정돼 있다.

전통사찰로 등록된 보문사는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고려 예종(1115년) 담진국사에 의해 창건된 이래 비구니 스님들이 9백년을 이어온 고찰이다. 예로부터 보문사 일대를 '탑골승방'이라 일컬어 왔으며, 조선 후기 한양지도인 수선전도에도 승방으로 기록되어 있는 등 보문사는 역사적 전통성을 지닌 비구니 사찰이다.

또한 보문사는 세계 유일의 비구니 종단인 보문종의 총본산이자 도심속에 큰 숲을 품고 있는 친환경적인 템플스테이 사찰이며, 아울러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과 똑같이 조성된 보문사 석굴암에는 많은 참배객과 외국인이 찾아오는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도로명주소법 시행령 제7조(도로명의 부여·변경 기준) 1항에는 “지역적 특성, 역사성, 위치 예측성, 영속성, 지명과 지역주민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정하며”라고 되어 있다.

같은 법 시행규칙 제5조(도로명의 부여ㆍ변경의 세부기준) 3항에는 “도로명을 부여할 때 지명, 마을 이름, 역사적 인물의 이름, 국가보훈기본법 제3조제1호에 따른 희생·공헌자, 유적 및 문화재의 이름, 도로의 위치와 기능 및 시·군·구 이상의 권역을 대표하는 상징성 있는 공공시설물의 이름 등을 반영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개운사길의 경우 성북구청은 행정안전부로부터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이기에 사찰 역시 문화재사찰로 봐도 된다”는 답변을 듣고 나서야 개운사길로 변경을 진행했다. 

개운사와 마찬가지로 보문사 역시 문화재 보유 사찰로 ‘보문사길’로 도로명을 부여해도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심 실장은 “성북구 보문동과 간선도로인 보문로, 서울도시철도 지하철 6호선 보문역의 명칭은 역사적 전통성을 지닌 사찰 ‘보문동 3가 168번지 보문사’의 명칭에서 유래했다”면서 “천년고찰의 전통성과 역사적 의미를 지닌 보문사를 전통문화 유산과 문화재의 산실로 홍보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구청 스스로가 그 의미를 없애는 것은 서울시와 문화재청의 문화재 복원사업에도 반대한다고 자인하는 것”이라며 공무원들의 편의주의식 행정과 역사문화에 대한 저급한 인식을 지적했다.

또한, 심 실장은 “해당 지자체는 도로명에 ‘사(寺)’자가 들어가니까 기독교계의 항의를 의식하는 듯하다”면서 “문제는 화계사를 비롯한 대부분 사찰 명칭의 길 이름이 이번 정부의 조치로 사라졌다는 점이며, 불교계는 두 눈을 부릅뜨고 감시와 견제의 끈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문사 신도들은 7월 1일 오전 11시 성북구청 앞에서 항의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하경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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