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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무엇이든 할 사람이다"송석구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장

송석구 위원장은 가천의과대학 총장이자 대통령소속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장으로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 움직일 정도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사회통합위원회는 우리 사회 갈등의 폭을 줄이기 위한 화합의 방법을 모색하는 기관으로 2009년 발족 이후, 송석구 위원장은 2대 위원장을 맡고 있다. 교육자로, 사회통합을 위한 수장으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송석구 위원장을 BTN불교TV ‘어머니 나의 어머니’에서 만났다.
 


△ BTN불교TV '어머니 나의 어머니'에 출연한 사회통합위원회 송석구 위원장.

송석구 위원장은 오랫동안 율곡 이이를 연구해왔다. 사람들에게 율곡 이이는 그의 업적보다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아들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송석구 위원장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면서 한국의 유교와 불교에 대해 연구했다. 1991년 ‘율곡의 철학사상연구’, 1992년 ‘율곡 성학의 연구’ 등의 책을 펴내며 명실상부 율곡 사상을 연구하는 대표적인 연구자가 되었다.

그가 율곡 이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처럼 타에 모범이 되는 여성상이었으며 친·외가 모두에게 존경받는 어른이었다.

송석구 위원장은 어머니 나이 43살에 늦둥이로 태어났다. 큰 형님과 14살, 작은형님과는 12살, 가장 나이 차이가 적은 누나와도 5살 차이가 나다보니 형제들과는 가깝게 지낼 시간이 없던 탓에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어머니와 그 만큼 더 각별하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항상 나에게 ‘넌 무엇이든 할 사람이다’라고 말해주었어요. 태몽도 호랑이 꿈을 꾸셨대요. 그러고 보니 내 얼굴에서도 호랑이가 보이지 않아요? 하하하.”



△ 사진 속 어머니는 여리고 약해 보이지만 실제로의 어머니는 한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실 정도로 굳건하고 말을 아끼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여름에 삼계탕을 끓이면 송 위원장만 방에 불러다가 먹이셨을 정도로 늦둥이 아들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개구쟁이였던 어린 시절, 송석구 위원장은 학교 수업이 끝난 후 항상 집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어머니 얼굴을 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집에 어머니가 없으면 고구마 밭으로 달려갔다. 일꾼들과 함께 고구마를 캐고 있는 어머니를 향해 달음박질하여 그 품에 안기면 어머니는 좋아 웃으셨다고 한다. 그때 풍기던 어머니 땀냄새. 송석구 위원장은 그 좋았던 어머니 땀냄새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한다.

"난 우리 어머니가 늙었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우리 어머니는 워낙 고상하셨거든. 하루는 바위에 나는 버섯을 따러 산에 갔는데, 버섯 따는 어머니가 내 눈에 안보이자 가슴이 막 두근두근했어요. 어머니를 보고 있는데도, 항상 어머니가 그리웠어요. 어머니는 나에게 인생 최고의 우상이예요."

연인에 가까울 정도의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모자. 어머니를 향한 구구절절한 마음은 다음 에피소드를 통해서도 알 수가 있다.

때는 6.25 전쟁 1.4후퇴, 어머니는 송석구 위원장과 누나를 계룡산 및 당시, 신도안이라는 지역으로 피난을 보냈다고 한다. 누나와 함께 피난을 간지 이틀이 지나자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던 송 위원장은 누나를 남겨둔 채 혼자 어머니를 찾아 다시 집으로 왔다. 다시는 어머니 옆에서 떨어지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면서.

그러나 인민군이 계속 남하하자 송 위원장은 다시 옥계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약 2주 정도 머물렀지만 역시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 돼지고기를 먹고 설사가 났다는 핑계를 대고 다시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송석구 위원장은 좀 더 큰 곳에서의 배움을 위해 서울의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어머니는 곱게 키운 아들이 혼자 살며 고생하는 것이 안타까워 차라리 서울에 집을 얻어 살자고 했지만 송 위원장은 시골에 계신 아버지를 위해 그러지는 말자고 했다고 한다. 그 후, 해병대에 자원하여 입대하고 월남전까지 참전했다. 늦둥이 막내아들을 전쟁터로 보낸 어머니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렇지만 강인한 성격의 어머니는 단 한 번의 눈물을 흘리시지 않았다고 한다.

송석구 위원장은 평생의 짝인 배우자를 찾을 때도 어머니와 비슷한 이미지의 여성을 찾았다고 한다. 송 위원장이 기억하는 젊은 시절의 아내는 어머니처럼 고상하고 말이 없고 자존심이 강한 여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세월이 흘러 말이 많아졌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어머니의 장례식 때 15분 이상 울어 장례식이 잠시 지연되기도 했었다는 효심 가득한 아들인 송석구 위원장.
벌써 30년이 훌쩍 넘어 40년 가까이 된 어머니와의 이별. 항상 위가 좋지 않으셨던 어머니가 갑자기 건강이 안 좋다고 하여 집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괜찮다고 하여 서울로 올라왔는데 바로 며칠 뒤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들의 죄스러움. 송 위원장은 어머니에게 금강경을 읊어드렸다고 한다.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대전 보문산의 고척사를 다녔어요. 그러보니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는 잘 찾아가지 않았네요. 우리 어머니는 목소리가 좋아서 기도를 하면 그 기도소리가 너무 좋았습니다.”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든 모두 다 좋은 어머니이다’ 라고 말하는 송 위원장.

전생에 부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각별했던 모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지금의 송 위원장을 만든 건 ‘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어머니의 응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95년부터 2003년까지 동국대학교 총장을 지내며 불교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 송석구 위원장. 앞으로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장의 역할이 끝나면 불교발전에 미약하게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행보를 기대해 본다.

BTN 이진경  btnnews@b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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