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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불교의 뿌리는 우리 엄마죠."


현대무용가 김복희


우리나라 무용계의 대모이자 현대무용의 대가, 한양대 무용과 교수인 김복희. 그녀가 처음으로 안무를 만들어 창작 활동을 한 지 어느덧 40년이 흘렀다. 한국 현대 무용사에 한 획을 그은 김복희의 성공과 성장. 그 뒤에는 묵묵히 그녀를 지켜봐 준,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가 있었다.


△ BTN불교TV '어머니 나의 어머니'에 출연하여 어머니와의 추억을 이야기한 현대무용가 김복희님.

김복희는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들이 대접받던 시절. 불행인지 다행인지 외할머니도 딸만 다섯을 낳았고, 어머니도 딸만 셋을 낳았다. 집안에 딸만 있다 보니 그 시대 여자들이, 딸들이 느꼈던 서러움과 억울함은 오히려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시대의 상황으로 미뤄 짐작해 보았을 때, 아들을 낳지 못한 어머니의 맘고생은 매우 심했을 것이다. 김복희는 아버지의 장례식 때, 집안에 아들이 없어 사촌오빠가 상주를 하게 되자 ‘자식을 낳아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울던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그 말이 어린 마음에는 ‘딸은 자식이 아닌가.’ 싶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의 나이가 되어 보니 아들이 낳지 못해 맘고생이 심했을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복희는 다섯 살에 무용에 입문했다. 아버지는 무용을 반대했지만 어머니가 지지해주었다. 한국 무용을 가르치던 선생님은 춤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며 칭찬해주었다. 어린 김복희는 그 칭찬이 좋아서 점점 더 춤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 무용을 배운 것을 시작으로 학교에 들어가 발레를 배웠고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현대무용을 접하게 되었다.

“저의 춤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한국적’, ‘불교적’이라고 표현합니다. 현대 무용은 서양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한국의 색채, 정서를 춤에 담아내면 되는 것이죠. 어릴 적부터 불교 속에서 자라나 저의 춤에는 자연스럽게 불교가 녹아 있습니다. 그래서 해외에서 공연을 하면 관객들의 반응이 남달라요. 특히 불교적 색채가 강할수록 호응이 좋지요.”

학생시절 김복희는 방학마다 절에서 시간을 보다고 한다.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절에 데리고 가 방학을 보내도록 하였다.

어머니는 집에 있는 아버지와 절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방학 내내 아이들의 먹을거리를 지게에 짊어지고 집에서 절을 오갔다고 한다. 어머니의 불심이 무거운 지게를 등에 지고 산 중턱에 위치해 있는 절을 오르락내리락하게 했다.

김복희는 어머니를 따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절에 다니면서 말이 아닌 행동과 경험으로 자연과 자연의 순환의 섭리 등을 배울 수 있었다. 그녀는 이런 배움이 자연스럽게 예술적인 감정으로 승화되어 지금의 김복희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한다.


△ 하루는 어머니가 정원 한 가운데에 동그랗게 꽃을 심어 놓고 어떠냐 묻길래 '보기 싫게~' 라고 대답한 것이 아직도 가슴에 남는다는 효녀 김복희.  그녀는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부모의 말을 자기의 기준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항상 부모의 기준으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어느 날 어머니는 김복희의 둘째 아이를 업고 현관에 서서는 해외 공연을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는 딸을 향해 눈물을 보이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게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입버릇처럼 ‘아이들 크는 것 조금 더 보고 77살에 가련다.’고 했던 말이 현실이 되었다. 김복희는 어머니가 어렴풋이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대학생 때 성철스님이 계신 백련암에서 일주일간 매일 3천배를 한 적이 있어요. 3일 쯤 되고 나니 온 몸이 아프고 정신이 혼미해져 어디를 향해 절을 하고 있는지 조차 잊어버릴 정도였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제를 모시러 절에 갔을 때 성철스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부모님 제 지내는 사람이 3천배도 안하고!’ 그래서 다시 3천배를 했죠.”

김복희는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어머니가 지금 내 나이였을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효녀 심청이의 이름을 따 ‘김청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효녀라는 말을 들었고 김복희 본인도 누구보다도 어머니를 잘 이해했다고 생각해왔는데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다른 방법으로 어머니를 더 사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든다고 한다.

“제 불교의 뿌리는 어머니예요. 지금의 제 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죠.”

얼마 전 멕시코에서 '다시 새를 날리는 이유'라는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그녀는 곧바로 10월 터키에서 예정된 공연 ‘흙의 울음’을 준비하고 있다. ‘흙은 울음’은 이 땅의 아픔, 타국의 침략과 민주화 과정 등 우리의 민족사를 춤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몸짓. 그리고 그 속에 녹아 있는 불교, 그리고 어머니를 국적을 불문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글, 사진=이진경

BTN 이진경  btnnews@b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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